“왕께서는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의가 있을 뿐입니다(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
중국 전국시대 양혜왕이 위나라에 온 맹자에게 “선생께서 먼 길을 오셨는데 장차 우리나라에 어떤 이익이 있겠느냐”고 묻자, 맹자는 이렇게 일갈했다. 이 이야기에서 맹자는 사회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는 듯하다. 사회적 가치란 곧 인의(仁義)이자 사랑의 실천 아닐까. 이웃을 내 자신과 같이 생각하고(易地思之) 도우려는 마음을 갖는 것(惻隱之心)이 사회적 가치의 시작점이리라.
정부도 사회적 가치를 국정 운영의 중요 어젠다로 설정했다. 왜 사회적 가치가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된 것일까. 무엇보다 현재 상황이 이를 대변해 주고 있다. 무한경쟁과 신자유주의 성장 전략은 심각한 양극화와 불평등을 가져 왔다. 저출산, 고령화, 일자리 감소 등 경제 성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문제들이 쌓여가고 있고, 더 이상 지난날과 같은 고속성장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2020 OECD 한국경제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은 회원국 중 노인 상대 빈곤율이 가장 높고 소득불평등도는 7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한국의 이러한 상황이 코로나19로 인해 더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가적 재난이 발생하면 취약계층이 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업환경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2018년 수출기업의 54%가 글로벌 고객사로부터 기업의 사회적책임(CSR) 평가를 받았다. 골드만삭스는 CSR을 기업 평가모델에 반영하고 있다. ISO 26000이나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DJSI) ▷UN의 지속가능 발전 목표(SDGs)와 글로벌 콤팩트에서 보듯 사회적 가치는 이미 글로벌 트렌드다. 이젠 기업가치를 제고하기 위해서라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선택이 아닌 필수 항목이다.
우리는 경제적 가치가 모든 것을 지배하던 시기를 지나 상생과 협력의 시대로 가야만 하는 길목에 서 있다. 맹자는 상하가 서로 자기 이익만을 취하려 한다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上下交征利 而國危矣)고 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도 ‘불평등의 대가’라는 저서에서 불평등은 시장을 왜곡시켜 불안정을 야기하고, 불안정은 다시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했다. 이제는 이윤과 효율뿐만 아니라 사회공동체의 핵심 가치에 대해 되돌아 보아야 한다. 이 시대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한 상생공동체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간 우리를 지배하던 생각의 틀을 바꾸고 과감한 혁신에 나서야 한다. 이것이 향후 미래세대가 부담해야 할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부는 사회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사회적가치기본법이나 사회적경제기본법 등 법률 제·개정을 추진하고, 인권·안전·환경 부문에 대한 재정투자를 확대하는 한편 공공·민간부문에서 사회적 가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 중이다.
특히 설립 취지 자체가 사회적 가치라 할 수 있는 공공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국예탁결제원은 2014년 부산으로 본사를 이전한 뒤 부산 기업시민으로서 지역사회와의 파트너십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올해는 부산 지역사회와의 상생·협력을 경영방침으로 설정하고 3대 중점 과제도 마련했다. 첫째는 지역 일자리 창출이다. 법적 의무채용비율 시행일보다 2년 빠른 올해부터 신규인력의 30% 이상을 지역인재로 채용하고, 취약계층을 위해 박물관 시니어 도슨트 지원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둘째는 지역의 혁신·창업기업 및 사회적기업에 대한 지원이다. ‘K-Camp 부산’이라는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으로 지역 혁신·창업기업 육성을 지원하고 있고, 내년에는 부산시 등과 공동으로 IFC부산에 코워킹스페이스를 마련하여 스타트업 등에게 무료로 협업공간을 제공할 계획이다. 2018년부터는 부산 사회적경제 지원기금(BEF)을 공동 설립하여 사회적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강화해 왔다. 셋째는 지역사회 공헌이다. 지난해에 부산 증권박물관을 개관하여 시민에게 자본시장 교육 및 복합 문화공간으로 제공했다. 부산의 4개 중·고등학교에 학생들의 정서함양과 생태학습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학교명상숲을 조성했다. 아울러 따뜻한 자본주의를 실천하고자 설립한 KSD나눔재단을 통하여 지역 학교에 대한 장학금·학교발전기금 지원, 부산시민에 대한 금융교육, 취약계층을 위한 ‘사랑의 쌀 나눔 행사’ 등 다양한 공익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은 도시와 시간의 산물이다. 부산을 살기 좋은 아름다운 상생공동체 도시로 만들어 가는 것은 금융회사의 성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회적 가치는 지역사회와 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토양과 같다. 한국예탁결제원은 부산의 기업시민이자 동반자로서 그 밑거름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한국예탁결제원 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