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자율주행 자동차, 블록체인으로 대표되는 제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면서 종래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서비스가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 가파른 속도로 발전하는 새로운 기술이 지속적인 혁신을 이룰 수 있도록 하면서 우리 삶에 보편적으로 투영되기 위해서는 이를 가로막는 기존 규제가 정비되어야 한다.

정부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새로운 기술을 전통적 규제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연구하고 산업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는 신산업 분야나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제품이나 서비스가 출시될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해 주는 대표적인 규제 혁신 방안이다. 규제 샌드박스는 벤처기업과 스타트업 등의 자유로운 아이디어가 적용된 제품이나 서비스를 법령을 개정하지 않고 테스트할 수 있도록 허용할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와 준다.

이와 함께 지역의 혁신성장사업이나 전략사업 육성을 목적으로, 지역과 기업이 적용하고자 하는 새로운 기술을 검증하고 사업화하는 데 각종 규제가 이를 가로막지 않도록 획기적인 규제 완화 조치를 적용하는 ‘규제자유특구’ 제도가 있다. 부산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신뢰를 기반으로 한 블록체인 산업생태계를 조성한다는 목표 아래 특구 지정을 신청하였고 지난해 7월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됐다.

블록체인은 제4차 산업혁명이 상정하는 디지털 혁신을 위한 중요한 요소기술로 평가된다. 탈중앙화라는 특징을 지닌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서비스의 효율성, 투명성, 익명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거래 비용이나 법적 비용을 경감할 수 있다. 따라서 블록체인은 금융 거래, 물류, 부동산 거래, 공공안전, 관광, 보험금 청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이 예상된다.

그러나 블록체인 기술이 가지는 투명성과 등록된 데이터의 삭제나 수정이 불가능한 특징은 개인정보를 수집한 후 목적을 달성하면 지체 없이 그 정보를 파기하도록 하는 기존 개인정보보호 규율 방식과 상충하는 문제점이 있다.

부산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의 경우에도 블록체인이 가진 이 같은 기술적 특징과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기존 규제와의 충돌이 문제다. 그 결과 현재 추진 중인 7개의 실증사업에서는 처리 목적을 달성해 파기해야 하는 개인정보는 오프체인(Off-Chain)에 저장한 뒤 파기하고, 그 참조값만 블록체인(On-Chain)에 저장하는 방식을 특례로 인정받았다.

부산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의 실증사업은 지역 기반의 신산업 육성의 관점을 넘어 블록체인 관련 산업의 활성화에 필요한 공통된 규제를 발굴하고 시험하며 검증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했다. 향후 이 같은 공통된 규제를 국가 차원에서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현행 개인정보보호법, 위치정보보호법, 전자금융거래법 등에서 규정하고 있는 개인정보의 파기에 관한 규율 방식은 블록체인의 특징을 감안한 특례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개정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아울러 정부는 실질적인 법률 개정의 어려움을 감안하는 경우 규제자유특구법의 ‘메뉴판식 규제 특례’를 활용해 기업이 손쉽게 기존 규제에 대하여 유예나 면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함께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부산의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 지정과 실증사업을 통한 규제 특례의 경험은 단순히 지역의 혁신 성장에 기여하는 관점을 넘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혁신의 구체적 모습을 제시함으로써 관련 규제 완화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블록체인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속적인 관심과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