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 ‘호타루’는 국내에도 잘 알려진 ‘철도원’의 감독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이 연출한 2001년도 작품이다. 감독 특유의 잔잔함이 가득한 영화지만 다루는 주제는 상당히 무겁다. 한국인 가미카제 특공대원을 기억하는 일본인들의 이야기다. ‘철도원’에서도 주연이었던 일본의 국민배우 다카쿠라 켄이 맡은 배역인 가고시마의 어부 야마오카는 신장병으로 고생하는 아내 도모코를 보살피며 고기잡이로 생계를 이어간다. 서로를 극진히 대하면서도 어딘가 너무 조심스러운 이 부부는 기구한 사연을 지니고 있다. 그들이 잊지 못하는 가네야마, 한국 본명 김선재는 도모코의 약혼자이자 야마오카의 특공대 상사였다. 호타루, 즉 반딧불이가 되어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전투기에 몸을 실은 식민지 출신의 군인, 사지로 떠난 애인을 따라 목숨마저 포기하려했던 여인, 그리고 그녀를 구해 평생의 반려자로 보살피고 뒤늦게나마 함께 김선재의 고향인 안동 하회마을을 찾았던 한 일본인 남성의 이야기가 한국인 관객의 가슴을 적신다.

굳이 비판적으로 보자면 이 영화는 한일 간의 불미스러운 과거사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고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처리하여 어설픈 화해를 연출했다고 지적할 수도 있겠다. 정치적이거나 역사적인 판단기준으로 보면 그렇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한국인 가미카제 대원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된 바가 없는데, 설령 그들 중 일부가 정말로 일본제국에 충성하는 마음으로 참전했더라도 그들이 어느 모로 보나 역사의 희생자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러한 심각한 역사적 사안을 고작 남녀 간의 애정 문제로 축소시키는 일본인 감독의 숨은 정치적 의도에 대해 의심해보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좀 다른 각도에서 볼 여지가 있다. 이상적으로만 보면 김선재가 제국주의 전쟁을 명시적으로 반대하고 반대세력을 규합하여 저항운동에 나서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물론 이 영화에서 가미카제 특공대원으로 나오는 가네야마 김선재는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순응했을 뿐 불세출의 영웅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들 중에 대체 그런 영웅이 몇이나 있겠는가. 이 영화는 불가항력적인 현실 앞에 허탈하게 마주선 우리 같이 평범한 개인을 다룬다. 이 영화 속의 등장인물은 하나 같이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서민이다. 김선재와 도모코의 사랑은 물론, 그와 일본군 전우들 간의 깊은 우정도 한국인과 일본인의 관계라기보다는 그저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일 뿐이다. 이 영화가 부각시키는 것은 식민통치와 전쟁이라는 불가항력적인 힘이 개개인에게 강요했던 실존적 선택이다.

이 영화 속 등장인물이 잔잔하게 주는 감동은 그처럼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그나마 인간의 품격을 잃지 않았다는데 있는 것 같다. “저는 내일 아침 출격합니다. 반드시 적함을 격침시키겠습니다. 그러나 대일본제국을 위해 죽으러가는 것은 아닙니다. 조선민족 만세! 도모코 상 만세! 이렇게 떠나는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비록 전쟁에 감히 맞서지는 못했을지언정 사랑하는 이를 향해 아리랑 한 소절을 목 놓아 부르고 전투기에 몸을 실었던 김선재의 선택은 과연 일제에 대한 부역으로 폄하되어야 할까? 그에 대한 마음을 평생 간직하며 자식도 낳지 않았던 여인,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옛 상관의 약혼녀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그녀와 함께 기꺼이 낯선 땅을 찾아 고인의 유지를 전했던 주인공은 일본인이기에 앞서 한 인간이다.

사실 김선재의 유언은 문자 그대로만 이해할 것은 아니다. 불가항력적인 힘이 이들에게 선택을 강요할 때 이들은 부족하나마 그래도 자신이 품을 수 있는 작은 의미만큼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서 운명을 감내했던 것이다. 이 의미가 헛된 것이라고 누가 감히 탓할 수 있으랴. 전쟁 당시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을 어머니처럼 보살폈던 여관 주인이 왕년의 특공대원들이 마련해준 송별회에서 울며 고백했던 말은 이들의 숨은 고뇌를 알려준다. “내 자식이라면 그리 죽으라고 못했을 겁니다. 내가 죽더라도 자식은 지켰겠지요.” 그녀는 결국 가네야마가 유품으로 남긴 하회탈을 그의 고향에 전해달라고 야마오카에게 간청하고 그는 이 어려운 청을 받아들인다. 입술을 꽉 다문 주인공의 허탈한 표정은 이들이 감내해야 했던 실존적 상황을 잘 대변해주는 것 같다.

비록 그들이 가슴 속에 품었던 소박한 의미가 정치적으로는 무가치하고 논리적으로도 어설플지언정 그것마저 없다면 삶이, 아니 죽음이 너무나 무가치해질 것이다. 그들은 모두 마음 한구석에 고인을, 흩날리는 반딧불이를 깊이 간직한 채 묵묵히 살아간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어찌할 도리가 없는 상황에 직면하여 우리 평범한 개인들이 인간의 얼굴을, 인간다운 품격을 그나마 유지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이렇게 시각을 바꾸면 불행했던 과거사가 다르게 보인다.

부산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