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부족한 건 코로나19 백신만이 아니다. ‘자유’ 또한 그에 못지 않게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달라는 국민청원이 10만 명을 돌파한 게 대표적인 예다. 변희수 하사의 죽음으로 증폭된 성소수자의 성적 지향 자유 보장 여론도 열기를 더해 간다.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살인적 추위와 더위, 코로나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 자유 요구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부자유의 절규들을 생각하다 시인 김수영(1921~1968)을 떠올렸다. 아니, 정확히 말해 그를 소환했다. 우리 현대사에서 누구보다 치열한 자유주의자였던 그에게서라면 부자유한 작금의 현실을 개혁할 영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마침 올해는 김수영 탄생 100주년이라 그의 문학과 사상에 대한 조명이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언론 자유나 사상의 자유는 헌법 조항에 규정이 적혀 있다고 해서 그것이 보장되었다고 생각해서는 큰 잘못이다.” 1960년 9월 20일의 일기에서 그는 정부의 적극적 자유 창달을 강조했다. 그러지 않을 경우 되레 “정부가 두 자유를 구속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했다.

김수영은 그로부터 16일 후인 10월 6일, ‘김일성 만세’라는 시를 썼다. ‘김일성 만세/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인정하는 데 있는데//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이것을 인정하면 되는데//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관리가 우겨대니//나는 잠이 깰 수 밖에 ’. 이런 시를 썼다 해서 그를 사회주의자로 간주하면 오독이다. 그는 국가에 의한 개인 자유 침해를 철저히 반대한 자유주의자이자 민주주의자였다. 진정한 언론 자유는 이런 반체제적 표현도 허용돼야 이뤄질 수 있다는 뜻을 담은 시일 뿐이다.

4·19혁명 1주년을 맞아 쓴 김수영의 산문 ‘아직도 안심하긴 빠르다’를 보면 그 취지가 분명해진다. “요나마의 변화도 장 정권이 가져다 준 것은 물론 아닌데 장면들은 줄곧 저희들이 한 것처럼 생색을 내더니 요즘에 와서는 ‘반공법’이니 ‘보안법 보강’이니 배짱을 부릴 만큼 건방져졌다.” ‘김일성 만세’는 4·19혁명 후 들어선 민주당 장면 정권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을 존치한 데 대한 항변이었다. 당시 초대 농림부 장관 조봉암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날조된 국보법 위반죄로 희생된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기개가 아닐 수 없다.

그런 김수영이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뭐라고 할까. 아마 가장 먼저 국보법의 건재를 통탄하지 않을까 싶다. 유엔 인권이사회 등 국제사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여러 차례 국보법 폐지를 우리 정부에 권고한 것을 알게 되면 격노할 것이다. 그가 우려할 만한 부자유는 이뿐만 아니다. 최근 여당이 발의한 ‘역사왜곡방지법’도 비판을 면키 어렵다. 역사 해석의 자유까지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서다. 법안에 따르면 ‘역사 심리위원회’가 역사 왜곡 여부 등 역사 해석에 대한 최종 권한을 갖는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역사학자 카의 말에서 보듯이, 시대 변화에 따라 끝없이 다양하게 해석되는 역사를 법의 좁은 울타리에 가두겠다니 난센스도 이런 난센스가 없다.

역사 해석의 자유는 지난해 12월 ‘5·18 역사왜곡처벌법’ 제정 때 이미 위태로워졌다. 당시 철학자 최진석은 “역사적 사실을 정부가 특별법으로 묶어 처벌하는 예는 문명국가에서 거의 없다”며 “이렇게 되면 역사를 가진 세계가 모두 법으로 묶일 것이고, 그러면 자유와 민주는 숨이 막힌다”고 했다. 그의 주장은 5·18 왜곡 행위를 처벌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허위사실 유포나 명예훼손과 관련된 현행법으로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으니 특별법을 만들 필요가 없고, 그리해서도 안 된다는 얘기다. 이는 국보법 제정 당시 “형법으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는데, 왜 국보법을 따로 만드느냐”고 했던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의 지적과 같은 논리다. 두 법의 이런 논리적 결함과, 이를 무시하고 법을 시행한 무리수가 바로 자유 침해의 근원이다. 그 무리수는 ‘김일성 만세’ 시구처럼 ‘관리가 우겨대는 정치의 자유’를 타고 온 사회로 확산돼 시민의 자유를 짓누르고 있다.

김수영은 산문 ‘시여, 침을 뱉어라’에서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고 했다. 이른바 ‘온몸 시론’이다. 온몸 시론의 궁극적 지향점은 자유다. 그는 “시를 보는 기준은 자유의 회복”이라고도 했다. 온몸으로 쓰는 시를 통해 자유를 회복하려는 게 시인 김수영의 인생론인 셈이다. 그렇다면 “자유 회복은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죽는 날까지 지식과 행동의 일치를 추구했던 지극한 자유주의자 김수영에게서 얻은 ‘온몸 자유회복론’의 교훈이다.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