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부산시가 사직종합운동장에 정구장을 개장했다는 소식을 들어 기대효과 등에 관한 기사를 쓰고자 정구협회 측에 연락했다. 돌아온 답은 ‘아직은 쓰지 말아달라’. 의외였다. 그간 테니스장에서 더부살이했던 아마추어 정구인에게 국제규격에 맞는 경기장이 3면이나 생겼다는 건 매우 반길 만한 소식인데 대체 왜? 정구는 말랑말랑한 연식공을 쓴다는 점만 다를 뿐 테니스와 경기 방식이 같고, 코트도 동일해 동호인이 꽤 있는 생활체육 종목 중 하나다.

사정은 이랬다. 국제경기가 가능한 정구장 3면이 지난 1월 문을 연 건 맞다. 하지만 시가 선수(전문체육인)에게만 개방했을 뿐, 아마추어 동호인(생활체육인)의 시설 사용은 허가하지 않아 그림의 떡이라는 설명이었다. 정구장은 전문체육인과 생활체육인이 함께 쓰는 공간으로 계획돼 시가 8억5000만 원을 투입, 오픈했다. 하지만 개장부터 지금까지의 경기장 이름은 ‘소프트테니스 선수 전용 훈련장’. 부산시체육회에 선수로 등록된 성인이나 학생만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선수는 각자 훈련장이 있어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선수는 안 쓰고, 생활체육인은 쓸 수가 없어 국제규격의 공설 정구장은 7개월째 파리만 날린다.

시는 애초 계획과 달리 왜 선수만으로 사용을 제한했을까. 공공 체육시설 운영 규정상 시민에게 개방하려면 샤워장 화장실 탈의실 등 편의시설이 있어야 하는데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공사 과정에서 예산이 늘어났지만 초과분을 확보하지 못해 관련 편의시설 없이 문을 열었다. “예산을 추가로 확보해 1, 2년 내 시민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시의 해명이지만, 이 대목도 이해되지 않는다. 대책이 너무 늦기도 하거니와 이동식 화장실을 설치하고, 컨테이너 시설물을 활용해 탈의실을 만든다면 큰돈 들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시가 몇백만 원 예산 들이는 것조차도 못하겠다면, 길만 건너면 되는 사직체육관 내 편의시설과 공동 활용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도 미덥잖은 이유를 대며 8억이나 넘게 들이고도 신축한 체육시설을 마냥 놀리고 있다.

안일한 부산시 체육행정의 한 단면이다. 이때 작은 일(시의 여러 대형 사업에 비하면 작다는 의미) 하나에도 이렇게 ‘의지가 없는’ 체육행정이 뭔가 사고를 치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얼마 안 가 큰일이 터졌다. 지난 18년간 부산을 연고지로 두고 활동했던 남자프로농구 kt 소닉붐이 경기 수원으로 기습 이전한 것이다. 물론 경제논리를 들이대며 20년 가까이 많은 사랑을 줬던 부산팬들에게 안면몰수하고 튀어버린 대기업 kt가 가장 나쁘다는 건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사태를 키운 건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한 복지부동 시 체육행정이다. 사실 이전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어서, 사전에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대처했다면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었을 거란 아쉬움이 크다. 기습 이전에 관한 구단의 내부 결정은 작년 말과 올해 초로 추정한다. 구단은 내정에 앞서 부산시와 만남을 가지려 했지만, 시는 결정권자(부산시장)가 없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뤘다. 옮길 마음이 굴뚝같았던 구단으로선 명분이 생기는 일이니 ‘웬 떡이냐’ 했을 거다.

늑장 대응으로 뒤통수를 맞은 시 체육행정 탓에 부산시민은 요즘 프로농구 최고 스타 플레이어인 허훈의 경기를 더는 사직에서 직관할 수 없다. 지난 십수 년간 동계시즌엔 농구로 야구·축구 휴식기의 아쉬움을 달랬으나 그 기회를 박탈당했다. 서장훈 조성민 신기성 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이 뛴 구단을 가진 도시라는 자부심을 부산시민은 더는 가질 수 없게 됐다. ‘규정이 없다’ ‘결정권자가 부재하다’(사실 부산시장 권한대행이 있었으므로 결정권자가 없었다는 말도 핑계다)는 태도는 21세기 행정에 어울리지 않는다.

시는 kt 농구단 이전 이후 부랴부랴 롯데 자이언츠, 부산 아이파크, BNK 여자농구단 등 지역 프로구단을 만나면서 애로사항을 듣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그나마 희망적이다. 그러나 ‘전시소통’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야구장 재건축, 축구 전용경기장 신축, 정구장 전면 개방 등 산적한 과제에 대한 답을 이제는 내놔야 한다.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은 고치겠다’는 부산시. 수요자 중심으로 확 달라질 체육행정을 기대한다.

생활레포츠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