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명소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으며 한 해 20만에서 3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경남 남해군 남면 가천마을. 산비탈에 층층이 만든 특유의 다랑논 풍광 덕분에 더 잘 알려진 다랭이마을로 공식 명칭을 바꾸려고 할 정도다. 2005년 국가 명승으로 지정된, 어디에도 없는 이 풍광은 주민이 개발 유혹을 이겨내고 옛 모습을 지켜낸 결과다. 이 마을을 외부와 연결하는 1024번 지방도의 버스정류장에서 마을로 내려가며 다랑논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광에 시선을 뺏긴다. 중간에 마을을 벗어나 동쪽으로 좁은 도로를 잠깐 걸어가면 우거진 나무 사이로 현판이 떨어져 나간 교문이 나타난다.
1949년 가천국민학교로 개교한 뒤 1984년에 삼남국민학교 가천분교가 됐다가 반세기에서 딱 두 해 모자라는 1997년 남명초등학교에 통합되며 폐교가 된 학교의 흔적이다. 농업진흥청의 전통테마마을과 농협의 팜스테이마을로 지정되며 관광객이 몰리자 오히려 주민이 회의를 거쳐 개발에 제한을 받을 수도 있는 명승 지정을 신청하고 주민 주도로 다랭이논보존회를 만들어 전통을 지키며 개발을 최소화해 더 유명한 관광 명소로 부상했지만 폐교된 가천분교의 쓸쓸한 풍경을 이전으로 되돌리지는 못한다.
아직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다른 학교가 있다. 가까이 통영대전고속도로가 지나지만 서쪽으로는 남덕유산에서 육십령을 지나 뻗어 내려온 백두대간이, 북쪽과 동쪽으로는 황석산과 거망산 기백산 금원산 등 해발 1300ｍ를 넘나드는 고봉이 에워싼 한갓진 곳에 있는 조그마한 시골 학교인 함양군 서하초등학교다. 면 소재지에 있는 초등학교이기는 하지만 노령화와 인구 감소의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듯했다. 그런데 딱 2년 전인 2019년 12월 전교생 12명에 불과했던 이 학교는 다른 지역 학생 유치를 위한 파격적인 제안으로 화제가 됐다. 코로나19 때문에 시행을 미루기는 했지만 매년 전교생 해외 어학연수와 함께 장학금 지급, 주거지 알선 등을 내세웠다. 이듬해 졸업생이 빠지면 폐교 위기에 부닥쳤던 서하초등학교는 학교와 지자체, 교육 당국, 주민, 졸업생이 힘을 모은 이런 노력 덕분에 별도의 위원회를 구성해 학생을 선발할 정도로 전국에서 지원자가 넘쳐나 폐교 위기를 넘긴 것은 물론 작은 규모의 지역 사회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청년의 시골살이와 귀농·귀촌을 도울 함양군 청년 레지던스 플랫폼이 서하면에 문을 열기도 했다.
인구 감소의 거대한 파고 앞에서 지방 소멸의 목소리가 높다.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보다 많아지는 ‘인구 데드크로스’는 지난해 처음 발생했지만 고령화와 젊은 층 유출의 이중고를 겪는 경남은 이미 2년 전부터 겪는 일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출생통계를 보면 경남의 합계출산율은 0.85명으로, 2008년 조사 이후 처음 0명대로 진입했다. 출생아 수도 2013년 3만 명 아래로 내려온 뒤 빠르게 줄어들어 2019년에는 2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지난해에는 1만6800명으로 더욱 큰 폭으로 감소했다. 게다가 청년 인구의 순유출은 해가 갈수록 가파른 상승세다. 이러니 시골 작은 학교가 버티지 못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질 지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서하초등학교의 시도에 뒤이어 경남도와 경남교육청이 손을 맞잡고 벌이는 작은 학교 살리기 프로젝트는 어찌 보면 거센 물결을 거스르는 힘겨운 시도다. 그러나 무척이나 의미가 큰 시도다. 서하초등학교 사례는 ‘영호남 4개 폐교 위기 시골 학교 살리기’로 이어져 인근 거창군과 전북 남원시 무주군 4개 학교가 참여하며 학교가 있는 지역마다 20명 전후의 아이가 늘어나는 효과를 봤다. 지난해 경남도와 경남교육청 합작 프로젝트의 시범학교로 지정된 남해군 상주면 상주초등학교는 사업 1년 만에 25명이 전입하는 열매를 맺었다. 그 덕분에 전교생이 1년 전보다 3분의 1이 늘었다. 올해는 의령군과 창녕군 함양군 3개 지역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사업이 착착 진행 중이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지난 10월 발간한 ‘지방소멸 위기 지역 현황과 향후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으로 경남 18개 시·군 가운데 합천 남해 산청 하동 의령 함양 고성 창녕 밀양 거창 함안 사천 통영 등 13곳이 소멸위험 지역으로 분류됐다. 지자체마다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다양한 시책을 쏟아내지만 가시적인 효과를 보는 곳은 많지 않다. 작은 학교 살리기는 그런 가운데 의미 있는 성과를 본 셈이다. 관건은 이 학교들의 성공이 5년 뒤, 10년 뒤까지 지속하고 더 많은 지역과 더 많은 학교로 대상을 넓힐 수 있는가다. 다만 그러려면 우리 사회가 가져야 할 관심과 부담이 적지 않다. 큰 결심이 있어야만 하는 일이다. 아이는 온 마을이 나서 키운다는데 이제는 온 나라가 나서서 전력을 다해도 아이 키우기가 마냥 쉽지는 않은 일이 돼버렸다.
편집국 부국장 겸 경남본부장 ocean@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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