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8년 충북 청원군(현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소로리의 구석기 유적지에서 볍씨가 발견됐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해보니 약 1만7000~1만3000년 전에 재배했던 볍씨로 확인됐다. 이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중국 후난성의 볍씨(약 1만1000년 전)를 단숨에 뛰어 넘었다. 이에 따라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벼농사의 기원 등에 관한 연구도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일부에서는 다소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당시에는 한반도에서 벼가 자라기 힘든 상황이었으며 벼농사가 본격화된 것이 청동기시대(약 3500년 전)라는 점 등을 고려하면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게 대표적인 반박 논리다. 더 나아가 ‘소로리 볍씨’가 한반도 벼농사의 기원으로 완전하게 인정받으려면 주위에서 관련 유물이 더 나와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러나 학계 논쟁의 결과는 별개로 하더라도 한반도에서 오래 전부터 벼 재배를 비롯한 농업이 이뤄진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조선시대엔 농업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조정에서는 ‘농사직설’ ‘임원경제지’ ‘금양잡록’ 등 책자를 만들어 보급했다. 20세기 들어서도 농업의 비중은 줄지 않았다. 식량 및 농산물 증산 계획은 늘 정부의 주요 경제 정책에 담겼다.

그런 만큼 우리 사회에는 꼭 지켜야 할 농업 유산도 많다. 아울러 이런 자산을 단순히 관광자원으로만 활용할 것이 아니라 선대의 생활 양식을 현대에서 기릴 수 있도록 해야 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전국에서 오랫동안 형성되어 온 유·무형의 자원을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하는 이유다. 지난 2013년 1월 전남 청산도 ‘구들장 논’과 제주 ‘밭담’이 처음으로 목록에 이름을 올린 이래 지금까지 17개로 늘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달 말 ‘창원 독뫼 감 농업’에 인증서가 수여됐다. 독뫼는 평지에 솟아 있는 독립된 구릉성 산지를 일컫는다. 창원시 동읍, 북면, 대산리 일대에서는 152개 독뫼에서 고목을 활용해 감을 재배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기록을 감안하면 이 곳에서는 수백 년 전부터 감 농사가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독뫼 감 농업’이 더해짐에 따라 경남에서는 하동 ‘전통 차농업’과 고성 ‘둠벙’ 등 3개가 국가중요농업유산에 포함됐다. 이제 남은 일은 체계적인 보존 및 관리다. 소중한 농업유산의 가치가 후대에 길이 전승될 수 있도록 지자체와 주민들은 이전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