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말 어느 아침 서울 지하철 출근길이 마비될 정도로 큰 혼란을 겪었습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주도한 지하철 출근길 승하차 시위가 발단이었습니다. 시위는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요구를 내걸었습니다. 바쁜 아침 출근 시간에 시민을 볼모로 한 무리하고 불법적인 시위라고 비난을 가하는 측과 장애인을 떠나 모든 국민의 기본권 중 하나인 이동권 확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하는 측 사이에 논쟁이 격화됐습니다. 이를 지켜보며 떠올렸던 생각은 과거 나치 독일의 히틀러에 의한 유대인 박해 사건이었습니다.

히틀러는 당시 경제적으로 피폐하고, 정치적으로 불만 가득한 독일 국민의 마음속에 찬 울분을 유대인을 공적(公敵)이자 희생양으로 돌려 권좌에 올랐지요. 이는 끝내 역사발전의 퇴행과 인류사적 재난을 불러일으키고 말았습니다. 일반 독일 시민이 이성과 도덕, 양심으로 인해 속내에 품고 있었지만 평소 차마 겉으로 끄집어내지 못하던 유대인 차별의식과 적대감이라는 이중성을 교묘히 악용한 사례입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전장연의 시위를 “비문명적”이란 말로 비난했지만, 결국 일반 시민이 장애인을 대하는 이중성을 이용하고 선동했다고 봅니다. 물론 이 대표가 장애인 전체를 매도한건 아닙니다. 전장연 시위를 대하는 이 대표의 태도와 발언에 분노하는 양식 있는 언론과 여론의 비판과 비난은 당연하지만, 많은 이의 내면에 자리한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무시라는 또 다른 인간성은 이 대표를 옹호할 수 있습니다. 우리 속내에 깃든 파시즘이 섬뜩합니다.

개미 일꾼처럼 바삐 사는 우리네 일상에 지하철 승하차와 운행을 방해하는 건 시민의 불만과 원성을 살 수 있습니다. 실정법을 위반한 것도 분명 사실입니다. 굳이 장애인에 대해 편견과 차별의식이 없는 이들에게도 짜증을 불러일으킬 만합니다. 장애인이 요구하는 이동권 보장이란 기본권의 가치보다 우리네 하루 일상이 더욱 가까이 있고 소중하게 다가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전체 인구 5.1%가 장애인으로 등록돼 있고, 2020년 한 해만 해도 8만 명이 장애인으로 신규 등록하는 나라, 그리고 후천적으로 사고나 질병으로 장애인이 되는 경우가 88%에 이르는 이 나라에서 좀처럼 장애인을 거리에서 찾아보기 힘든 건 장애인이 외출을 꺼려한다기보다 거리로 나갈 수 있는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아서입니다. 지하철역 대부분에 승강기가 있어도 휠체어가 넘기 어려운 턱이 얼마나 많은지, 거리에 나서거나 건물로 들어가면 아예 절벽인 경우도 숱합니다. 이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장애인에게 ‘장애물’은 무수합니다.

숱하게 요구해도, 시위해도 신문이나 방송에 한 줄 보도조차 되지 않아 평소 우리가 무심했을 뿐입니다. 정권이 바뀐다 하니 새 정부에 격렬한 호소를 한 셈입니다. 많은 출근길 시민이 불편을 겪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평소 장애인이 겪는 통한의 고통에 비할 수 있을까요. 우리 사회의 약자가 달리 있을 리 없는데 약자에 대한 심적 무언의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고 꼬집어 말한다면 크게 잘못일까요. 우리 사회가 더는 비겁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번 장애인 시위를 보며 영국의 여성 참정 운동가였던 에멀린 팽크허스트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그녀는 숱한 청원에도 불구하고 여성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자 지지자들에게 상점 유리창 깨기와 우체통 방화와 같은 살상 없는 불법 시위를 선동합니다. 그녀는 시위로 뉴스가 신문에 도배가 될 정도가 돼야 여성 참정권이 얻어진다고 믿었습니다. 물론 그녀의 행동이 무조건 옹호받을 순 없습니다. 하지만 지난한 수배와 투옥 끝에 그녀가 죽던 1928년에야 영국에서 완전한 여성 참정권이 주어집니다. 영화 ‘서프러제트’에 나오는 가상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 모드 와츠의 말도 같은 맥락에서 실감 납니다. “우리가 창문을 깨고 불을 지르는 건 그들 남성이 알아들을 수 있는 유일한 언어로 답했을 뿐이다.” 우리가 처한 장애인 문제나 시위는 우리가 일상화하는 ‘언어’의 빈곤함과 저질성을 깨닫게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야만이요 비문명적인 참사입니다.

수년 전 서울 강서구 서진특수학교 설립 공청회에서 반대하는 지역 주민 앞에서 무릎 꿇고 울며 사정하던 장애인 자식을 둔 어머니들을 보고 눈물이 날 정도로 부끄러웠던 기억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길 바랍니다. 정작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 이들은 따로 있었습니다. 불법 시위라고 욕하고 손가락질하며 돌을 던지기 전에 저렇게까지 해서라도 거리에 나서야만 했던 장애인과 그 대표단체의 절박한 심정도 한 번쯤 헤아릴 수 있는 성숙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 나라의 문명 수준은 장애인을 바라보는 그 나라 국민의 시선 각도에 비례하지 않을까요. 4월 20일은 마침 제42회 장애인의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