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빼고는 다 올랐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은 ‘외식 물가’부터 공습했다. 동네 빵집 가격은 10~20% 뛰었다. 짜장면부터 생선회·치킨까지 안 오른 게 없다. 사료값 폭등에 농민도 울상이다. 미중 무역전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세계 공급망을 뒤흔든 탓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올해 3월 세계곡물가격지수는 사상 최고인 170.1포인트에 달했다.

기후변화 심화는 식량가격 고공행진에 불을 당겼다. 지구 반대편에서 확산한 조류 인플루엔자는 닭·오리 가격을 끌어올렸다. 브라질의 에탄올 제조용 사탕수수 수요가 늘자 설탕가격지수는 한달 새 3.3% 급등했다. 식량의 ‘무기화’ 추세는 더 우려스러운 대목. 농협경제연구소는 최근 발간한 ‘세계곡물가격 변동성과 식량안보’에서 “소수의 국가와 극소수의 곡물 메이저 기업이 곡물 생산·저장·운송을 독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아프리카에선 인플레이션과 가뭄으로 3억4600만 명이 굶어죽을 위기에 직면(국제적십자위원회)했는데도 세계 2대 곡물기업의 1분기 순이익은 36%~53% 급증했다.

세계 7위 곡물수입국인우리나라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주요 수출국들은 이미 ‘보호무역’에 돌입했다. 인도네시아가 팜유 수출을 제한하자 식용유 가격이 10% 넘게 뛰었다. 인산염 비료 최대 생산국인 중국이 수출을 통제하면서 필리핀의 요소 가격은 3배 급등했다. ‘세계의 빵 바구니’ 우크라이나는 올해 밀 생산량이 3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자 곡물 수출 제한에 나섰다.

국내 식량 안보에 중요한 변수가 하나 더 생겼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이다. 지난 4일과 6일 국회에서 열린 조승환(해양수산부)·정황근(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보자.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이 “수산인 입장에서 자유무역협정(FTA)과 CPTPP 중 무엇이 더 무서우냐”고 묻자 조 후보자는 “CPTPP가 더 무섭다”고 했다. 정 후보자는 “CPTPP 가입으로 관세가 사라지면 농업 부문에서 최대 4400억 원의 피해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CPTPP는 미국·일본·호주를 포함해 아시아·태평양 11개 국가가 결성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 세계 무역 규모의 15.2%를 차지한다. 지난해에는 중국·영국·대만·에콰도르가 가입을 희망했다. 우리 정부도 국회 승인을 받는 대로 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수출로 먹고 사는 국내 산업계는 CPTPP에 찬성하는 반면 농·어업인들은 반대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CPTPP 가입으로 국내총생산(GDP)이 0.33∼0.35% 증가할 것으로 기대한다. 산업연구원은 앞으로 15년간 연평균 약 7000억∼1조 원대의 순수출 증가를 예상한다.

반면 호주·뉴질랜드 같은 농업강국과 일본·베트남으로부터 수산물 수입이 증가하면 농수산 부문 피해는 불가피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농업 부문이 15년간 연평균 853억∼4400억 원의 생산 감소가 우려된다고 내다봤다. 수산업에서도 15년간 연평균 69억∼724억 원의 생산 감소가 발생한다. 중국이 CPTPP 회원국이 되면 연평균 피해 규모가 1조 원대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국농어민비상대책위원회가 연일 CPTPP 반대 집회를 개최하는 이유다.

특히 부산은 국내 생산 수산물의 30%와 연간 600만ｔ의 수입 수산물을 보관·처리·가공하는 수산물 유통기지라는 점에서 CPTPP의 영향이 클 수 밖에 없다.

국내 농어업 인프라는 붕괴 직전이다. 국내 농림어업 인구는 2015년 292만 명에서 지난해 250만 명으로 6년 새 약 14% 감소했다. 곡물자급률은 20.2%(2020년)로 추락했다. 쌀 만큼 많이 소비되는 밀(1인당 연 32kg) 자급률은 0.7%대. 부산 어업인구와 어업생산금액도 최근 10년 새 30% 이상 줄었다. 생산기반이 붕괴되면 기후위기 심화나 국제분쟁 같은 변수에 신속한 대처가 불가능하다. 줄어든 경작지를 확보해 파종·수확까지 하는 데 최소 1년 걸린다. 어선 건조에서 조업까지는 수 년이 필요하다.

기후 변화가 일상이 되고 전 세계적으로 경작지는 줄어드는데 ‘식량 안보’에 대한 정부 고민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민간 전문가들이 “국가재정법에 ‘식량안보 예산’을 편성하자”고 주장하는 정도다. 바다 영토를 관장하는 해양수산부 차관이 고작 1명인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차관급 검사는 40명이 넘는다. 윤석열 대통령 비서실의 비서관급 인사에서 해양수산전담 비서관이 임명되지 않은 것도 바다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스위스는 1996년 연방헌법에 식량안보 강화를 명문화했다. 국내 식량안보지수는 지난해 세계 32위였다. 일본은 8위. CPTPP 가입을 식량 안보와 연동해 논의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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