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러 나라에서 원숭이두창 등 신종 바이러스의 변종이 빠르게 확산돼 새로운 전염병에 대한 공포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어쨌든 방역당국은 지난 2일부터 실외 마스크 착용을 국민 개개인이 자율적으로 상황에 맞게 실천하기로 했다. 이런저런 위기 상황이 다소 좋아지긴 했지만, 일상은 아직도 코로나19와의 어려운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신록이 깊어가는 계절, 조금 나아진 방역지침 덕분에 야외에서 운동하는 시민이 부쩍 늘어났다. 부산시민공원이나 온천천을 거닐다 보면 자주 보이는 모습이 있다. 달리는 시민 중에 편하게 설렁 설렁 뛰는 ‘아재’ 러너들과 성큼성큼 힘있게 뛰어나가는 ‘청춘’ 러너들이 묘하게 대비된다. ‘아재’들은 세상 바쁘지 않고, 때론 느려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아재’는 오랜 시간, 먼 거리를 꾸준히 달려간다. ‘청춘’은 보기에도 힘이 차고 자세가 세련되다.
어떤 일을 할 때 선배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흐름’과 ‘순리’에 맞게 하라. 그 뜻은 아마 상식과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판단하고 행동하라는 의미인 듯하다. 세상만사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요즘은 상식보다 파격이 대세인데 위와 같은 얘기는 다소 썰렁한 이야기 같기도 하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상식의 힘은 대단하다.
운동에서 장거리 달리기는 호흡과 심박수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 늦어도, 너무 빨라도 바른 운동이 어렵다. 이 적정 심박수가 장거리 달리기에서 내 몸의 ‘상식’이고 ‘지속가능성’이 될 것이다. 운동량을 무작정 늘려 보고자 욕심을 내면 심박수가 급하게 올라가고 힘이 들어 얼마 달리지 못하거나 운동의 역효과가 나타난다. 심하면 몸을 상하기도 하고 운동을 계속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당연한 말인데 우리는 이 당연함을 자주 잊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산다.
우리가 즐기는 달리기와 같이 정부와 기업, 가정경제에서도 현금관리 주가 집값 물가 등 많은 부분에서 상식과 지속 가능함을 벗어났을 때 큰 위기가 찾아왔다.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을 블랙스완(black swan)이라고 한다. 가장 최근의 블랙스완은 한국산 가상화폐 ‘루나 코인’ 사태인 듯하다. 안정적인 코인이라며 투자자들을 유혹해 전 세계 가상자산 8위까지 올랐던 이 코인이 폭락해 국내 피해자만 28만 명 이상이며, 불과 며칠 만에 시가총액 54조 원이 증발하는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지난 23일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인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루나 사태는 다단계 피라미드 사기였다고 비판했다. 금융전문가들이 수 차례 그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지만, 상식을 무시한 여러 가지 과욕이 99.99%의 주가 폭락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게 어려운 사례가 아니더라도 작년 브라질을 덮친 한파에 국제 커피원두 가격이 올랐고, 우리가 먹는 커피 가격이 상승했다. 최근 인도를 덮친 폭염으로 밀 수확량이 50% 감소해 세계 식료품 가격 상승에 영향을 준다. 밀이 주식인 나라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더욱이 밀이 포함되지 않는 식품도 상승할 것이라고 한다.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전 세계 물가가 5% 이상 오르고 있다. 이미 베네수엘라는 500%, 터키는 60%, 아르헨티나는 50% 이상 올랐다고 한다. 이처럼 순조롭게 작동하던 시장도, 자연현상도 어떤 변수가 예측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는 순간 생각보다 급격하고 쉽게 무너져버린다.
살아가면서 예측 불가하고 상식을 벗어나는 국내외 상황을 의외로 쉽게 경험하게 된다. 결국 이런 일이 발생하면 우리가 먼저 의지하게 되는 것이 나라와 정부다. 현재 우리 앞에는 코로나19, 부동산과 물가의 불안정, 인구감소와 노령화, 기회의 양극화와 지방의 몰락 등 다양한 비상식과 예측 불가능한 난제가 놓여 있다. 이것을 뛰어넘고 희망의 미래를 향해 달리는 대한민국의 페이스와 방향은 국민의 역량과 정부의 능력이 상식적이고 지속가능해야 한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자유와 상식을 자주 언급한다. 흔히 쓰는 단어인데 이번에는 의미가 새롭게 들린다. 앞으로 자유와 상식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삶의 행복이 성큼성큼 다가오길 기대한다.
임경수 부산사회적경제네트워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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