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부지 내에 사용후핵연료 관련 ‘건식저장시설’을 지으려는 계획을 곧 확정할 예정이다. 한수원 황주호 사장이 최근 국정감사에서 속전속결을 강조한 만큼 해당 안건은 이사회가 열리는 28일 바로 의결될 가능성이 크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확정한 후 10개월 만에, 탈원전 페기를 국정과제로 내세운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불과 5개월 만에 이뤄지는 셈이다.

탈핵부산시민연대는 어제 부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리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 계획은 사실상 영구처분장”이라며 “한수원은 기본계획안을 철회하라”고 밝혔다.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도 울산시청에서 한수원 계획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역사회 반발이 심한데도 한수원은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속도를 내고 있는 모양새다. 정부와 한수원은 고리원전 부지 안에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을 2030년까지 건립해 고리 2·3·4호기와 신고리 1·2호기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을 임시로 보관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고리원전 내 사용후핵연료는 수조 형태의 습식 저장시설에 임시 보관되고 있다. 오래전부터 습식으로 저장해온 탓에 수용한계에 도달하자 한수원은 별도의 지상 건식 저장시설 설치를 추진하는 것이다.

영구처분시설 확보는 1978년 국내 첫 원자력발전소인 고리1호기를 설립한 이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난제다. 주무부처인 산자부는 영구처분시설을 완공하기까지 최소 37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이 시설은 부지 선정(13년), 지하연구시설 건설·실증 연구(14년)를 거쳐 27년 후에나 착공할 수 있다. 고리원전 부지 내 ‘건식저장시설’은 영구 핵폐기장이 될 것으로 우려되는 이유다. 무엇보다 안전성 문제가 크다. 고리원전에는 현재 사용후핵연료 8000여 다발이 저장돼 있다. 고리 2·3·4호기를 10년 더 가동한다면 1000여 다발이 추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사용후핵연료는 방사선준위가 높고 고열을 계속 발산해 오랜 냉각 기간을 거치게 된다. 이런 위험천만한 핵폐기물을 지상에 보관한다니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건식저장시설은 지진, 해일 등 자연재해나 군사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한수원은 건식저장시설 구축 과정에서 주민동의 등 절차적 정당성을 전혀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중차대한 사안에 대해 부산시와 지역 정치권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자 주민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인구수에 비례해 사용후핵연료 다발을 서울시와 경기도에 나눠 보관해야 한다는 전국탈핵운동 단체들의 주장이 설득력 있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40여 년간 원전 가동으로 불안하게 살아온 부산·울산 시민에게 핵폐기물까지 떠안으라는 것은 가혹하지 않은가. 한수원은 주민 동의없이 추진하는 ‘건식저장시설’ 설치 계획을 재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