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세월 어렵사리 추진해온 부울경 특별연합을 통한 메가시티 형성 꿈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최근 박완수 경남지사의 특별연합이 아닌 행정통합 추진 선언, 김두겸 울산시장의 특별연합 추진 잠정 중단 선언에 이어, 어렵사리 마련된 부울경 세 시·도지사의 회동에서 뜬금없는 ‘부울경 초광역 경제동맹’ 출범과 부산·경남의 2026년 행정통합 추진 합의는 부울경 특별연합 결성을 위해 그동안 애써 공들여 온 탑이 하루아침에 허물어지는 허망감을 느낀다.

애당초 행정통합이 당장 어려우니 광역행정 거버넌스인 부울경 특별연합을 만들고자 했으며, 권한 이양도 재정 지원도 부족하지만 이왕지사 세 시·도가 힘을 똘똘 뭉쳐 중앙정부를 상대로 이러한 난제를 풀고자 했던 게 아니었던가. 갈라파고스란 곳이 있다. 남아메리카 에콰도르에서 무려 1000㎞나 떨어진 외딴섬이다. 찰스 다윈이 이곳에서 육지와 동떨어진 진화 생물을 발견하면서 진화론 구상의 영감을 얻었지만, 일본의 전자산업이 몰락한 배경을 설명하는 데도 인용된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일본은 휴대폰 등 IT산업 최첨단 강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국내에 갇혀 세계 시장과 국제 표준을 외면한 결과, 결국 쇠락하고 만 현상을 ‘갈라파고스 신드롬’이라 부른다. 외부와의 고립과 폐쇄가 키워드이며 몰락을 상징하는 메타포다.

스스로 갈라파고스의 늪으로 걸어 들어가는 데 이유가 없을 수 없다. 경남과 울산 주장을 들어보자. 경남과 울산이 가장 우려하는 게 소위 ‘빨대효과’다. 부울경이 연합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도시 규모가 크고 인프라가 우위에 있는 부산으로 인구와 자본 등이 쏠리게 돼 경남과 울산의 소멸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란다. 답을 드린다. 굳이 행정통합을 미루고 특별연합을 구상한 건 행정통합이라는 어려운 과정을 피하고자 하는 배경도 있었지만 부울경 각자가 우위에 있는 특화산업이나 인프라를 최대한 살리려는 기능적 연계를 전제로 했기 때문이다. 부산은 관광 교육 문화 기능을 강화하고, 경남은 로봇 등 기계산업이나 우주항공산업에 진력하고, 울산은 비교우위를 지닌 자동차 조선 화학산업에 집중 투자하는 기능적 배분과 보완성을 갖춘 상호의존적이며 네트워킹된 대도시권을 구상한다. 뿐만 아니라 해양자원 활용 관광산업의 연계를 통한 산업의 시너지 효과, 자동차 조선 기계 등 제조업 기반 권역경제의 산업벨트 형성과 동반성장, 지역별 특화산업 강화를 위한 초광역 협력이라는 꿈을 꾸어본다. 우려하는 농촌 소외 지역은 지리산 둘레길 연합 같은 산악관광이나 특수농작물 재배 등으로 수익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수도권만 해도 서울 인구는 줄고 경기도 인구가 늘어나는 건 지역 간 광역교통 인프라 덕분이다. 오히려 부산 인구가 높은 집값 탓에 인근 경남이나 울산으로 빨려 나갈지 모른다. 부산이 빨대효과를 걱정해야 할 형편이다. 경남이나 울산은 인구감소의 위기가 아닌 인구흡입의 기회일 수 있다. 단, 조건은 광역교통망의 구축이며, 이번 특별연합이 계획 중인 선도사업의 핵심이다. 거가대교로 이어진 경남 거제는 개통 5년 후 실시한 사회경제지표 조사에서 부산과의 교통 편의로 오히려 지가가 상승하고 관광 의료 쇼핑 주거이동 등에서 상호의존적 관계를 이루어 삶의 질이 높아졌다는 연구 결과도 나온다. 해외 사례도 부지기수다. 파리와 리옹을 잇는 고속 특급 테제베 노선, 후쿠오카로 연장된 신칸센, 국경을 넘어 코펜하겐과 말뫼 간 외레순 연결철도 등의 사례는 지역 분산효과와 더불어 초광역권 균형발전을 이룬 실증적 사례다.

다음으로, 특별연합의 권한과 재정의 독립성 확보, 부울경의 균형적인 기반 마련 후 메가시티를 조성하겠다는 울산시 주장은 논리의 모순이다. 부울경이 특별연합을 추진하는 목적이 바로 울산시가 지적하는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구인데, 난제를 해결하고 난 후에 기구를 만들자는 건 논리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 실제 2020년 지역내총생산(GRDP) 성장률에서 울산 -7.2%, 경남 -4.1%, 부산은 -2.9%로 세 시도는 나란히 전국 최하위권이다. 이런 난제를 안 그래도 힘겨워하는 개개 지방정부가 감당하거나 해결할 수 있을까. 청년 순이동인구는 2015년 부울경 전체 8400명에서 2020년 2만7000여 명으로 3배 이상 대폭 증가했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우리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 지역으로 울며 겨자 먹기로 떠나는 현실을 어찌 외면하는가.

지역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인구 1000만의 국내 최대 메가시티를 한번 멋지게 만들 절호의 기회를 잃어버리지 말자. 그래서 수도권에서 걸핏하면 ‘시골’이라 놀리는 부울경에 살아도 기죽지 말고 우리 아이들이 멋진 자연을 지닌 자기 고향에서 가족과 오순도순 살 수 있게 만들자. 고립과 폐쇄는 단절을 가져오고 단절의 각자도생은 침체와 몰락이다. 우리는 결코 갈라파고스의 악몽에 갇힐 수 없다.

박재욱 신라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