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동해남부선 해운대역사에 자리잡은 청년예술공간 ‘해운대아틀리에 칙칙폭폭’이 지난 1월 문을 닫았다. 지난해 5월 개관 이후 1년도 안된 시점이다. 이 공간은 해운대구청이 옛 해운대역사 내부를 6억 원 이상 들여 전시홀 세미나실 크리에이터실 등으로 리모델링한 다음, 작품 전시나 소상공인 홍보영상제작실 등으로 사용했으나 폐점으로 끝났다. 공간 활용도가 낮다는 게 이유다. 방문객이 주말에도 하루 100명을 넘기지 못하고 시설 운영 실적도 저조하다는 것이다. 구의회는 운영비 4000여만 원을 전액 삭감했다. 해운대구는 조만간 관광거점시설로 바꿀 계획이라고 한다. 리모델링 비용이 또 들어야 하고 부지 소유주인 한국철도공사 측에 임대료는 계속 지불해야 한다. 예산 낭비가 이만저만 아니다.

옛 해운대역사의 청년문화공간 운영 중단은 활용 방안을 놓고 지역 사회가 얼마나 뜨겁게 논쟁했던가를 떠올리면 결코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해운대역사는 기차 역사로는 특이한 외관을 취한데다 90년이라는 근현대 세월을 간직하고 있어 원형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쪽과, 철거 또는 이전을 통해 남은 공간을 주민에게 개방해야 한다는 쪽이 팽팽히 맞서며 수년간 논란이 이어졌다. 한국철도공사 측은 이런 지역 여론과는 별개로 이 땅을 상업시설로 개발하기 위해 기회를 엿봤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어렵사리 모든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조율해 탄생시킨 시설의 결말 치고는 너무 허무하다.

‘칙칙폭폭’은 전국적인 유명세로 여행객이 몰리는 해운대해수욕장 입구에 있다. 적어도 입지만큼은 방문수요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위치다. 그런데도 외면받는 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결국 시설의 콘셉트나 운영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고 해석할 수 밖에 없다. 국가는 물론이고 지자체들도 요즘 청년 어젠다를 쉽게 차용한다. 그러나 그렇게 만든 청년 관련 시설이나 사업이 성공으로 귀결된 게 그리 많지 않다. 청년푸드트럭이 그랬고, 국제시장 등에 문을 열었던 청년몰이 그랬다. 주체가 청년일 뿐 지속 가능성을 숙고하지 않은 탓에 좀처럼 선순환이 일어나지 않는다. ‘칙칙폭폭’의 실패도 비슷한 경로를 밟고 있다. 재개관 이후에 성공을 기대하려면 허명이 아닌 내실을 채울 수 있어야 한다.

철로 폐쇄 이후 남은 자원을 활용한 시설은 이제 국내외에 흔하다. 해외에선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파크,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이 대표적이다. 국내에도 군산 곡성 봉화 안동 등에서 호응을 얻는다. 부산에는 송정역 동래역 등에서 변신이 한창이다. 철도에는 역사와 이야기가 있다. 옛 철도 역사는 원도심 개발과도 연계된다. 이용자의 욕구를 잘 파악해 스토리까지 입히면 옛 해운대역사 역시 이들 못지 않은 명소가 될 수 있다. 해운대구는 가장 손쉽거나 이견이 없어 보인다는 이유로 섣불리 개발 방향을 관광거점시설로 확정 짓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