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정을 책임진 윤석열 정부가 잘해줘야 한다. 대한민국을 둘러싼 채 점점 다가오는 위기가 다양하고도 강력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잘못 대처하면, 국민과 나라가 입는 피해가 너무 클 것이므로 윤석열 정부가 잘해주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보수를 표방하는 현 정부가 출범할 때, 이 정부에 ‘뜻밖의’ 난제를 안길 수 있는 요소로 세 가지를 떠올려 보았다. ▷무리한 민영화 정책 추진 ▷이념에 바탕을 둔 편중된 문화 시책 강행 ▷국민 마음에 와닿지 않는 조급한 대일(對日) 정책 전환이었다. 경제 정책 같은 큰 분야는 어차피 나라 살림과 정부 평가의 상수여서 여기에는 포함하지 않는다.

보수를 표방했던 한국의 여러 정권은 민영화를 선호하는 신념을 밝히며 확대하려는 접근을 해왔다. 그러나 많은 국민이 신자유주의 정책에 호되게 당하고 상처받았다는 인식을 여전히 갖고 있다. 두려울 만큼 인구가 줄고 고령화가 빨라지면서 국민 인식에도 일정한 변화가 이뤄지는 듯하다. 먼 미래를 약속하면서도 당장엔 엄하고 인색한 정부보다 같이 좀 힘들어도 어쨌든 국민을 품겠다는 정부를 기대하는 느낌을, 시민과 이야기 나눌 때면 느끼곤 한다.

이념형 사고를 바탕으로 편중된 문화 시책을 만약 편다면, 이 또한 늪에 한 발을 담그는 걸음이 될 수 있다. 예술·문화인을 구성하는 성분에는 대체로 다음 두 가지가 포함돼 있다. 첫째 세상·기성체제를 남과 달리, 새로운 시각에서, 좀 비딱하게 본다. 흔히 이게 창의성으로 이어진다. 여긴 비판의 시선도 포함된다. 세상에 아무 문제의식과 불만이 없다면 봉준호가 ‘기생충’을, 황동혁이 ‘오징어게임’을 만들었겠나? 둘째 대체로 예민하고 명예심·자존감이 세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 (배우 고 강수연)

예술계나 단체 쪽에 또렷한 문제가 있다고 파악했다면, 그걸 바로잡고 가지런히 하는 핀포인트 방식을 쓰되 예술인에게 오른쪽·왼쪽이라는 억지스러운 프레임을 씌우지 말고 자유롭게 창작할 판을 펼치도록 뒷받침해주는 접근이 최선이다. 2014년 당시 정부가 문득 시작한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다이빙 벨’ 사태는 폭탄이 되었다.

이제 ‘대일 정책 전환’을 들여다보자. 윤석열 정부는 한일 관계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미국 정부의 의중과 전략이 한일 관계 개선을 매우 중시하는 쪽으로 짜여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중국과 심한 대결·갈등 구도를 형성한 현재 상황에서 미정부는 강력한 한·미·일 협력 체제를 절대 포기할 수 없을 터이다. 한국도 그 자장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밀접한 이웃 나라인 한국·일본 정부가 기약 없이 냉랭한 관계를 이어가거나 대립만 하는 상황의 손익을 따질 필요도 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사항이 나온다. 정부가 아주 신중하고 주의깊게 접근해야 한다. 그 핵심은 국민의 마음이다. 속도전은 포기하는 게 낫다. 한국 현대사만 살펴도 관련 사례가 많아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묶어 동아시아 안보의 핵심 자원이자 지대로 활용하려 했고, 한국 집권·지배층은 고강도 경제 발전을 이룬 일본에 저자세로 접근해 경제 이득을 취하려 했다.

그런 시도를 할 때마다 한국 집권층이나 미일 정부가 제대로 못 본 강력한 요소가 있었다. 우리 국민의 인식·판단·감정이었다. 1964년 한일 회담 반대 운동의 정점이 되었던 6·3 시위는 시위로 끝나지 않고 6·3 세대를 낳아 한국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 뒤로도 비슷한 양상은 작동했다. 특히, 한일 관계와 관련한 과정에서 눈여겨볼 세력이 있다. ‘일본군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이었을 뿐’이라고 강변하는 등 한반도에 대한 군국주의 일본의 강점을 사실상 합리화하거나 옹호하는 세력이다.

이 세력의 말을 들으면 안 된다. 그런 이들의 말을 잘 살피면 결국, 한국 민중의 힘 같은 것이 없었다는 주장으로 귀결한다. 아예 민중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면서 지우려고 든다. 그들은 오로지 권력과 힘이라는 요소에 집중한다. 힘세고 일찍 선진화된 일본이 약한 조선을 먹은 게 자연스럽지 어쩌란 말이냐 하는 태도를 거기서 느끼게 된다. 이들의 철 지난 주장에 끌려가면 우리 국민의 인식·판단·감정을 무시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쩌랴. 한국은 민중의 힘으로, 국민의 저력으로 자란 나라인 것을. ‘삼국유사’를 시작으로 한민족 고난 극복과 의사 표현의 역사를 살펴보시라. 크게 보면 백성이 견디고 지키고 가꿔 오늘까지 왔다. 정부는 한일 관계 재정립 행보에서 전문성 있다고 자처하면서도 실은 ‘한때 강했던’ 일본의 옛 이미지에 갇힌 세력을 극력 경계해야 한다. 그 대신, 일제에 맞선 선조와 군국주의 일본의 피해를 직접 입은 국민을 예우하고 의견을 존중하면서 관계 재정립을 모색하는 편이 지름길이다.

조봉권 부국장 겸 문화라이프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