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아아아,아아, 야 아아아,아아’아이들이 흥얼대는 소리가 자꾸 귀에 걸린다. 졸깃졸깃한 젤리 같은 발음이다. 어떤 노래의 마지막 구절인 듯하다. 나는 귀를 더 가까이 대고 가사를 들으려고 애쓴다. 볼에 열감이 느껴진다. 문어, 꿈, 장미… 단어가 아이들 입속에서 흘러나왔다. 제목이 ‘문어의 꿈’이란다. 문어는 성격 있고, 단기 기억, 장기 기억을 구분하며, 사람까지 기억하는 능력이 있다. 비인간 인격체의 후보라고 할 만큼 지능이 높다고 한다. 악마의 물고기로 여겨 꺼려한다는 속설까지 있다. 그런 문어가 꿈까지 꾼다?



나는 문어/꿈을 꾸는 문어/꿈속에서는 무엇이든지 될 수 있어

나는 문어/잠을 자는 문어/잠이 드는 순간 여행이 시작되는 거야

높은 산에 올라가면 나는 초록색 문어/장미 꽃밭 숨어들면 나는 빨간색 문어

횡단보도 건너가면 나는 줄무늬 문어/밤하늘을 날아가면 나는 오색찬란한 문어가 되는 거야 아아아, 아아, 야 아아아 아아

깊은 바닷속은 너무 외로워/춥고 어둡고 차갑고 때로는 무섭기도 해 애애애 애애 야 아아아 아아

그래서 나는 매일 꿈을 꿔/이곳은 참 우울해



노랫말을 여러 번 음미해 본다. 중독성이 있다. 술을 먹고 하는 넋두리 같다. 툭툭 내뱉는 말투는 투박하고 거칠다. 그러면서도 절묘하게 꺾어주는 트로트 맛도 난다. 앳된 아이 목소리 같기도, 한이 서린 어른 목소리 같기도 한 것이 창법이 참 독특했다. 바닷속은 너무 외롭고 춥고 어둡고 차갑고 때로는 무섭다. 마치 내가 살고 있는 현실 같아 어금니를 꽉 문다. 그래서, 그래도 매일 꿈을 꾼다. 야 아아아, 아아, 야 아아아 아아. 아이들이 불렀던 마지막 후렴구는 오색찬란한 문어가 되고 싶어 하는 외침 같아 더 슬프다. 절망적이지만, 또 희망적이다. 잠을 자는 동안은 그렇게 바라던 멋진 문어가 되는 상상을 할 수 있다니, 어떻게 생각해 보면 행복한 문어일지도.(꿈꾸는 것조차 잊어버린 지금의 나. 오늘의 그런 나보다는 행복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 나는 소심한 아이였다.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과 달리 텅 빈 교실에서 늘 혼자 책을 읽었다. 발표 시간에도 발표는커녕, 남들 앞에서 제 의사를 표현하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특별히 무엇을 잘하는 지도, 무엇을 해야할 지도 몰랐다.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어려웠던 것만큼 꿈을 꾸는 것도 낯설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선 막연히 글 쓰는 것에 대한 동경이 자라고 있었던 모양이다. 장래 희망난에 ‘작가’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적고는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문어의 꿈을 들으며 문어의 비밀스러운 속삭임을 되뇌어 본다. ‘쓰고 꿈꾸는 것을 멈추지 마라’. 문어가 알려주는 암호였다. 쓰고, 쓰다 보면 반복의 나날이 겹겹이 쌓이듯, 한 편 한 편의 글들이 모여 소설집을 내는 과정임을 잘 곱씹어 보라는 의미였다. ‘인간이 진정 할 일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나는 쓸데없이 내 삶을 연장하려 하지 않으리라. 나는 나의 시간을 쓸 것이다’.(잭 런던) 나 역시도 나의 글을 글 쓸 것이다.

요즘, 이 노래도 좋다. 1997년 ‘소년점프’에 연재되었던 오다 에이치로의 해양모험만화 ‘원피스’다.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라고 용기를 내 넌 할 수 있어라는 말, 거센 바람 높은 파도가 우리 앞길 막아서도 결코 두렵지 않다는 말, 우리 모두의 꿈을 모아서 함께 도전하자는 말들은 나를 꿈꾸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마음속 불꽃을 당기는 것이다. 점점 식어가는 하나(한 조각)의 꿈을 찾아 나서는 이 길이, 느리고 두렵기도 하지만 결코 외롭지 만은 않다. 자꾸 되돌아가는 길을 찾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문을 열었을 때 난, 마주 하게 될 미지의 시간을 기대한다.

5월은 푸르다. 우리들 세상이다. 마음만 먹으면, 꿈을 꾸면 무엇이든지 될 수가 있다. 오색찬란한 문어처럼. 꿈꾸는 문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