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서는 보기 어렵지만 주택에는 집집마다 수도계량기가 있다. 매월 시청수도과에서 일하는 검침원들이 방문검침해 수도 사용량을 기록하고, 수도요금 고지서를 집집마다 배부한다. 계량기에 문제가 생기거나 하면 민원을 받아 정리하기도 하고, 이사를 하거나 수도요금이 장기 체납되면 그에 따른 통지나 단수조치도 한다. 수시로 시청 수도과로 출근해 민원대장을 작성하고 수도요금 고지서 분류나 우편발송 업무도 한다.

그런데 수도검침원들은 대부분 최저임금 적용 대상이 되지 못했다. 연차휴가도 없고, 20년을 일해도 퇴직금도 없었다. 2000년대 들어 모든 지방자치단체들이 수도검침원들과 근로계약 대신 ‘위탁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일하는 방식은 달라진 게 없었지만 계약서 이름이 바뀌자 하루아침에 퇴직금도, 연차수당도 없어졌다. 주52시간제가 자리를 잡으면서 야근이나 휴일근무가 많이 줄었지만, 검침원들은 낮 동안 집을 비우는 세대가 많아 어쩔 수 없이 밤이나 휴일에도 일을 해야만 했다. 근로자로 안쳐주니 야근수당이나 휴일근로수당은 없었다. 일하다 다쳐도 산재처리는커녕 치료기간 동안 대신 일할 사람을 알아서 구해야 하는 신세였다.

2019년에 이르러 법원은 포항시 수도검침원들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했다. 경남지역에서도 밀양시 진주시 등에서 연이어 수도검침원을 근로자로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잇따랐고 이후 대법원에서까지 최종 확정됐다.

최고 법원인 대법원까지 수도검침원들을 근로자로 인정했으니 이제는 산재도 적용받고 최저임금도 보장되어야 할 것인데, 진주시 수도검침원들의 지위는 어찌 된 일인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진주시가 소정근로시간을 트집잡고 있기 때문이다. 소정근로시간은 사규나 근로계약서상 통상적인 근로시간을 기재해 둔 것을 말하는데,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예외 없이 근로기준법상 상한 근로시간인 1일 8시간, 주 40시간으로 되어 있다. 시급제 알바를 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모두가 주 40시간으로 되어 있는 게 정상이다. 그래서 그간 소정근로시간은 노사 공히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냥 법에 정해진대로 근로시간 상한인 주 40시간으로 두고 누구도 이를 단축시키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소정근로시간을 주 40시간보다 적게 둔다고 해서 월급제 근로자의 월급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정근로시간을 뜬금없이 노사합의로 단축해 문제가 된 곳이 있었는데 바로 택시업계다. 과거 택시근로자는 고정월급은 매우 낮고 회사에 사납금을 내고 난 뒤 초과운송수입금으로 부족분을 메우는 체계였다. 언뜻 보기엔 문제가 없어 보일 수 있지만 고정 월급이 너무 적다 보니 시장 상황이나 계절에 따라 최저월급도 못 벌어 생활고에 시달리는 근로자가 수두룩했다. 그래서 2007년 국회는 택시근로자들도 소정근로시간대로 최저임금을 보장하도록 최저임금법을 개정했다.

그러자 택시회사들은 최저임금을 보장하도록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게 아니라 그간 누구도 관심이 없던 ‘소정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기형적 행위를 했다. 최저월급이 ‘최저시급×소정근로시간’으로 구해지기 때문이었다. 그간 노사 누구도 관심이 없던 소정근로시간 규정은 알고 보니 최저임금 보장 여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것이다. 문서상 소정근로시간을 주 40시간이 아닌 주 20시간으로 고치면 최저월급도 올해 기준 201만 원이 아니라 101만 원만 줘도 불법이 아니게 되는 마법이 가능했다. 그렇게 택시회사들은 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택시기사들에게 여전히 최저월급을 주지 않아도 되게 됐다.

당연히 주 40시간이 되어야 할 소정근로시간을 진주시가 뜬금없이 트집 잡는 이유는 쉬이 가늠되지 않는다. 하지만 소정근로시간이 최저임금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향후 최저임금이 올라도 그만큼 월급을 올려주지 않으려는 매우 부당한 의도가 아닌지 의심된다. 근래 택시업계에서 있었던 일이고, 진주시가 일용직으로 구한 수도검침원에게도 굳이 주 40시간에 못 미치는 소정근로시간을 정해(월 16일 근무로 규정) 그 해의 최저월급보다 적게 지급한 전례도 있기 때문이다.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외근업무임을 악용한 조치다.

급기야 진주시는 최근 검침원들의 퇴직금 청구소송에서 “주 15시간 미만의 초단시간 근로자에 해당할 수도 있다”는 식의 주장까지 하고 있다. 주 15시간 미만의 초단시간 근로자에게는 퇴직금 지급의무도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외근업무라 정확한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다지만 하루 3시간도 일하지 않는 것으로 쳐서 퇴직금까지 주지 않으려는 것은 상식을 아득히 넘어 대법원 판결에 대한 불복이자 헌법과 노동법에 대한 도전이나 다름없다. 헌법을 준수해야 할 지방자치단체가 정말 이렇게까지 해도 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