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위 환적항인 부산항이 주요 글로벌 해운동맹의 기항지(허브항)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커졌다. 내년 2월 출범을 앞둔 ‘제미니 협력’은 아시아~유럽 항로 기항지에서 부산항을 비롯해 일본 대만 베트남을 뺀다는 계획안을 최근 발표했다. 부산항은 허브항 대신 지선항(피더항)으로 낮아질 전망이다. 제미니 협력은 세계 2위 머스크(덴마크)와 세계 5위 하파그로이드(독일)가 새로 결성하는 해운동맹이다. 부산항이 이들의 항로에서 빠지면 환적화물 격감으로 위상 추락은 물론이고, 관련 산업에 미치는 파장이 엄청나다. 최근 활발해진 해운동맹 재편 움직임이 국내 최대 국적선사인 HMM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던 시기에 또 다른 악재가 터진 것이다.

부산신항 서컨테이너부두 2-5 단계 전경.국제신문 DB

부산항은 물동량의 절반 이상이 환적화물이다. 최근엔 환적 허브로 도약하기 위해 일본 등으로 가는 환적 물량을 확보해 물동량을 늘려놓은 상황이다. 글로벌 선사의 해운동맹 재편은 그동안 여러 차례 있었다. 그 자체로는 부산항에 큰 타격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하파그로이드의 기존 동맹 이탈로 그 물량을 소화하던 부산신항 1, 3, 4 부두는 벌써 직접 영향권이다. 여기에 기항지에서도 빠지면 타격은 가늠조차 힘들다. 국내 화주가 제미니 소속 선박으로 물건을 옮기려면 부산항에서 중소 선박에 화물을 실어 인근 허브항으로 옮겨야 한다는 의미다. 시간과 비용이 모두 증가하는 구조다. 다른 동맹을 이용하려 해도 선사 입김이 강해져 물류비가 상승할 수밖에 없다.

제미니 협력의 부산항 제외는 어느 정도 예견됐다. 머스크와 하파그로이드가 새로운 동맹을 결성하게 된 배경엔 일종의 ‘선택과 집중(허브 앤 스포크)’ 전략이 깔려 있다. 홍해 항로 봉쇄, 대만-중국 갈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여파로 최근 몇년 새 해운 물류 리스크가 커졌다. 비용은 낮추고 정시성을 높이려면 간선 기항지만 몇군데 남기고 나머지는 지선으로 재편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인접 중국 항만에 비해 물량이 작은 부산항은 유탄을 맞을 가능성이 충분했던 것이다. 항만당국이 부산항의 지리적 이점을 믿고 안일하게 대처한 건 아닌지 따져볼 일이다.

가뜩이나 해운동맹 재편으로 HMM 앞날이 불안하다. 제미니 협력의 하파그로이드는 기존 HMM과 같은 디얼라이언스 소속이었다. 해체든 유지든 제미니 결성의 파장이 HMM 소속 동맹에도 필연적이다. 더욱이 거대 해운동맹의 부산항 배제는 항만 위상이라는 상징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국내 화주, 관련 산업 등 전반에 끼치는 악영향이 실질적이다. 부산은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 제정을 바탕으로 동북아 물류와 금융 중심지로 도약한다는 꿈을 갖고 있다. 핵심 인프라가 가덕신공항과 부산항이다. 제미니 협력의 기항지는 올 3분기 최종 확정된다고 한다. 그때까지 부산항 피해 최소화를 위해 정부 부처 차원의 총력 대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