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전력반도체 활성화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 같다. 최근 언론은 소부장 전력반도체 특화단지로 지정된 부산에 정부 지원금 약 415억 원이 투입된다고 보도했다. 이를 통해 8인치 SiC(실리콘 카바이드)를 이용한 전력반도체 양산 테스트베드를 구축하고 소부장 R&D 과제와 인력양성 사업을 펼친다는 것이다. 필자 회사도 특화단지 앵커기업으로 다른 전력반도체 관련 기업들과 소부장 R&D 과제를 진행할 예정이다.

국내에서 반도체 하면 대부분 삼성과 하이닉스를 떠올린다. 즉 삼성과 하이닉스가 만드는 메모리반도체를 전부라고 생각하는데 실제 비메모리반도체 시장 규모가 더 크다. 비메모리에는 인공지능 같은 시스템반도체도 있지만 전력을 제어하는 전력반도체도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휴대전화 충전기나 헤어드라이어기, 전기차를 구동하는 인버터, 발전소에서 전기를 송배전하는 장치가 모두 전력반도체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국내는 전력반도체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전력반도체는 전략물자로 분류해 아무리 돈이 많아도 타국의 전력반도체 회사를 쉽게 살 수 없다. 이에 따라 전력반도체는 자국에서 직접 생산하거나 아니면 수입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발전소 송배전에 사용하는 전력반도체를 자국에서 생산하지 못하고 수입한다고 할 때 해외 제조국에서 전력반도체를 국내로 수출을 하지 못한다면 발전소에 송배전 전력반도체가 없어 블랙아웃(특정지역에서 전기가 끊기는 현상)이 된다.

부산은 전력반도체를 직접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동남권의과학산업단지 내에 준비해 왔다. 부산테크노파크(TP)가 전력반도체를 직접 생산하는 상용화 센터 6인치 FAB 공장을 운영해 왔다. 2023년에 동남권의과학산업단지가 전력반도체 특화단지로 지정됐고, 최근 정부지원금을 받게 됐다. 6인치 FAB 공장을 지을 때도 정부 지원을 받았다. 이번에 추가된 정부 지원금으로 6인치 FAB 공장을 확대해 생산능력을 올리고, 8인치 SiC 반도체 FAB 공장의 기반을 준비하는 데 사용할 예정이다. 필자가 지켜본 결과 부산과 부산TP는 전문가를 잘 활용해 6인치 FAB 공장을 잘 짓고, 잘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8인치 SiC FAB 공장은 이전 6인치 FAB 공장과는 또 다른 기술이 필요하고 운영하는 인력도 많이 요구된다. 8인치 SiC FAB 공장은 미국 독일 일본도 제대로 양산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어느 정도 양산할 수 있는 수준에 올랐다고 해외 언론이 보도하지만 필자 생각에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선진국 회사들의 사정을 고려하면 부산의 8인치 SiC FAB 공장의 준공과 운영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다방면의 전문가 추진단을 구성해 조언을 듣고 과제를 수행할 필요가 있다. 부산시는 특화단지 추진단을 통해 그런 작업을 할 것으로 알고 있다.

신규 전력반도체를 개발하는 소부장 R&D 과제도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중앙정부도 전력반도체 활성화를 위해 많은 R&D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전력반도체 기술의 난도가 높아 국내 기술은 중국의 전력반도체 기술도 따라잡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는 정부 R&D 지원금이 많다고 해서 풀릴 문제는 아니다. 개발이 돼도 실증 기반 시설이 너무 부족하다. 전력반도체 제품 개발 완료 시 검증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인력 양성도 만만치 않다. 전력반도체 관련 기업들은 인력난을 호소한다. 정부와 부산시는 부산 지역 거점대학을 통해 인력양성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인력양성 사업으로 배출된 학생들이 수도권으로 취업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우수한 인재를 뽑기 위해 부산 지역 거점 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습을 진행하는 등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수도권 반도체 기업에 취업하기 좋은 이력을 만들어 준 결과를 가져왔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

처음 생각한 방법과 결과가 항상 최선은 아니다. FAB 공장을 만드는 테스트베드 사업이나 전력반도체 소부장 기업을 활성화할 수 있는 R&D 사업, 그리고 전력반도체 인력양성 사업이 처음 생각한 것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잘못된 것이 있다면 과감하게 바로잡고 새로운 의견을 수렴해 좀 더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

이번에 특화단지 지정으로 인해 지원받는 것은 지원금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부산이 전력반도체 메카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관심을 받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러면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더 잘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다음에는 더 많은 국민과 부산 시민의 지원을 받아 부산에 둥지를 튼 전력반도체 회사들이 날개를 펴고 세계 무대에서 선진국 회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