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의 사직서 제출로 촉발된 의사들의 파업이 50일을 넘겼다. 이번 파업의 핵심 동력은 전공의들이다. ‘밥그릇 싸움’이라는 비난도 있지만 전공의의 수련 환경과 열악한 지위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전공의 특별법’의 제정은 그 산물이다. 정식 명칭은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이다.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5년에 제정됐다. 2012년 12월, 열악한 근무 환경을 견디지 못한 전공의들의 잇따른 자살이 계기가 됐다. 2013년 새누리당 황우여 의원의 ‘전공의 수련기준법’ 발의, 2014년 전공의 수련 시간 상한을 정한 대통령령,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의 법안 발의를 거쳐 우여곡절 끝에 통과돼 오늘에 이른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 자격시험에 합격하면 개원이 가능한 의사가 된다. 이들이 더 높은 보수와 사회적 지위를 위해서는 전문의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자면 수련 과정을 밟아야 한다. 전문의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에 있는 의사가 바로 인턴, 레지던트라고 부르는 전공의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증가를 반대하는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가장 많이 드는 이유가 수련을 위한 병원시설과 교수진의 부족이다. 지금도 제대로 된 수련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원이 대폭 늘어난다면 전공의 수련 환경이 더 열악해질 것은 분명하다. 파업 참가 전공의를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의대 신입생의 수를 오히려 지금보다 더 줄여야 한다는 응답이 3분의 2 가깝게 나온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전공의의 처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비록 전문의를 따기 위해 수련하는 과정에 있긴 하지만 엄연한 의사다. 이런 점을 악용해 종합병원은 이들에게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의료행위를 강요해 왔다. 전문의를 고용하는 것보다 싸게 먹히는 장사였다. 전공의로서는 이런 환경을 개선하지 않는 의대생 증원은 병원만 살찌울 뿐, 전공의의 처우를 더욱 어렵게 할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점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환자를 두고 병원을 떠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물론 이 외에도 의대 정원 확대만으로는 지방의료나 필수의료를 강화하기 어렵다는 이유, 건강보험의 재정이 문제가 될 것이라는 등의 이유도 있다. 그러나 이는 통계를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또 학자마다 견해가 달라 환자를 두고 병원을 떠나는 명분으로는 설득력이 없다. 더구나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에 국민의 지지가 90%가 넘는 것은 오히려 그것이 지방의료나 필수의료를 강화할 것이라는 기대를 반영한다.
필자는 전공의에게 국민과 함께 싸울 것을 권한다. 그리고 그 모범은 간호사를 비롯한 병원 노동자로 구성된 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의사가 떠난 의료현장을 지키며 필사적으로 환자를 돌보고 있다. ‘전문간호사’들은 사실상 의사의 공백을 메우고 있다. 이들의 이런 헌신이 없었다면 의료현장은 지금보다 훨씬 심각했을 것이다.
물론 의사가 아닌 이들이 의대 정원 확대와 직접적인 이해관계는 없다. 그렇다고 이들의 헌신을 당연하다고만 할 수 없다. 필자의 생각에 그런 헌신은 바로 노동조합으로부터 나온다. 보건의료노동조합은 의료계와 정부가 대화할 것을 촉구하는 한편, 진료 거부의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하면서 의료현장을 지키고 있다.
전공의에게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어떤 전개가 펼쳐졌을까 생각해 본다. 아마도 수련환경의 개선은 물론 지방 의료와 필수 의료 강화를 위한 대안을 놓고 병원, 정부와 협상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이뤄졌을 것이다. 합법적 대표성과 지도력으로 의료 개혁의 방향을 정부와 지속적으로 숙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싸울 수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지금의 싸움도 환자와 손잡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 싸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노동조합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의료 노동의 주인인 전공의들 스스로 개혁의 주체가 되는 길, 결과적으로 환자를 보호하고 국민과 함께하는 방법을 찾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직한 전공의가 구직활동을 한다는 기사에서 보건의료노동조합의 ‘돈보다 생명’을 떠올렸다면 너무 야박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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