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시민 30년 숙원인 맑은 물 확보 방안이 불과 2주 만에 좌절됐다. 부산시와 의령군이 지난달 12일 체결한 ‘낙동강 유역 맑은 물 공급을 위한 상생협약’이 의령 주민들의 심한 반발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의령군은 이 상생협약을 해지한다고 지난달 26일 부산시에 통보했다. 이에 따라 부산의 고질적인 물 문제 해결을 위한 ‘낙동강 취수원 다변화 사업’이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2028년 부산 시민에게 맑은 물을 공급하겠다는 시의 약속 또한 공수표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지난 12일 낙동강 취수원 다변화 사업의 경남 의령군 취수원 개발예정지를 방문해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부산시 제공

낙동강 물은 이미 식수 원수로서의 기능을 잃었다. 이 물로 농사 지은 쌀에서 조류독성물질이 검출됐다. 이런 낙동강 물을 대체하기 위해 경남을 향한 시의 노력은 지난하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오염 사고 이후 1994년 남강댐과 합천댐 물을 끌어오는 광역상수도 계획을 세웠지만 군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후 낙동강 지류인 황강 물, 창녕의 강변여과수 취수 사업도 현지의 반대로 실패했다. 2000억 원 넘게 투입해 완공한 하루 4만5000ｔ 생산량의 기장 해수담수화 시설은 시민의 불신으로 놀리고 있다. 이 시점에서 의문이 든다. 이런 새 사업을 추진할 때 과학적 검토가 있었는지, 해당 지역 주민들의 마음은 제대로 읽었는지.

최근 환경부의 낙동강 취수원 다변화 사업 최종 보고회, 예타에 이은 타당성 조사 및 기본 계획 용역은 체계적이었다. 의령군에서 하루 22만ｔ, 창녕군에서 하루 49만ｔ의 강변여과수를 취수하고, 합천군 황강 복류수 19만ｔ을 더해 부산과 동부경남(창원 김해 양산)에 각각 42만ｔ, 48만ｔ을 공급하는 방안이 도출됐다. 시가 첫 상생협약에 나선 곳이 의령군이다. 시는 연간 200억 원 규모로 취수 지역의 농산물을 구매하기로 했고 이후 안정적인 판로를 위해 추가 지원도 약속했지만 돌아온 건 강한 반대였다. 의령 농민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것이다. 그들 입장에선 물을 빼앗기는 게 탐탁지 않을 수도 있다. 강변여과수 취수로 인해 낙동강 지하수 수위가 급격히 낮아지면 농업용수 확보가 힘들어 1년 농사를 망칠 수 있는 까닭이다. 최악의 경우 물 부족으로 대대손손 이어온 농사를 못 지을 수 있다. 시는 상시 모니터링을 통해 문제가 발생하면 취수 중단 등을 약속했지만 허사였다.

시는 이 사업이 넘어야 할 가장 크고 높은 산은 농민들의 마음임을 알아야 한다. 보상도 좋지만 그들의 마음을 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주 찾아 그들의 불만을 들으며 성의 있는 답변으로 불신의 벽을 깨야 한다. 시 차원에서 단체로 찾아 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애로사항을 듣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겠다. 시의회는 의령군의회와 자주 교류하며 시가 직면한 물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등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겠다. 의령을 넘으면 창녕과 합천 군민들이 기다린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 돌다리를 두드리며 마음의 간격을 좁혀야 맑은 물을 구할 수 있음을 시는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