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 침수 위험이 높은 지하차도에 비상대피시설이 여전히 부족하다. 부산 지하차도 59곳 중에서 사다리와 구명봉 설치가 끝난 건 대남 우장춘로 문현 개금 당감 장평 장전 장전접속 등 8곳에 그친다. 신선대와 센텀시티 지하차도는 공사라도 하는 중이지만 나머지 49곳은 사실상 무방비 상태다. 심지어 3명의 목숨을 앗아간 초량 제1지하차도조차 시설이 완비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2014년 우장춘로, 2020년 초량 제1지하차도 같은 대형 참사를 10년 새 두 번이나 겪은 부산 시민으로선 행정당국의 안이한 대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14년 9월 침수로 인명 피해가 났던 부산 동래구 우장춘 지하차도에서 소방대원과 구청 관계자들이 배수작업을 하고 있다. 국제신문 DB

부산시가 대피시설 필요성을 인정한 34곳만 봐도 설치율은 23.5%에 그친다. 일선 구·군 관리 지하차도는 18곳 중 3곳, 부산시 소관은 11개소 중 2곳, 부산시설공단은 5곳 중 3곳에 불과하다. 구·군 단위로 보면 보완 대상이 6곳으로 가장 많은 해운대구를 비롯해 강서구(5곳)와 동구(3곳)는 완료된 곳이 한 군데도 없다. 아예 대피시설 설치 대상으로 선정되지 않은 지하차도 역시 25곳이나 된다. 서울 포항 오송 등에서 목격했듯이 반지하방이나 지하주차장에서 침수에 의한 인명 사고가 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다. 차단기가 있다거나 침수 우려가 적다는 등 이유만으로 관리 대상에서 제외하는 게 적절했는지 재검토가 필요하다. 예산 확보 속도가 느려 부산시가 약속한 2026년까지 사업이 마무리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지하차도 비상대피시설 설치는 법적 의무사항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비극적인 사고를 이미 겪었으면 의무든 아니든 장마철이 오기 전에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더구나 설치하려는 시설은 사람이 벽을 타고 기어 올라갈 수 있도록 돕는 사다리, 차도 양끝으로 지상 대피를 유도하는 구명봉 정도다. 장시간 대규모 공사를 요하는 작업이 아니라는 말이다. 최근 최종심이 확정된 초량 제1지하차도 사건 재판 결과를 보면 시설물 관리를 담당하는 공무원에게 책임을 무겁게 묻는 추세다. 법적 의무사항이 아니지만 만약의 사태에 충분히 대비를 했느냐와 안 했느냐는 사후 책임 소재와 경중을 가리는 데 큰 차이를 만든다.

관련 기관이 실시한 시뮬레이션 자료나 사고 당시 상황이 담긴 영상 등을 보면 지하공간에는 물이 차오르는 속도가 생각보다 매우 빠르다는 점, 설사 수심이 그리 깊지 않아도 유속 유압 혼탁도 등 여러 이유로 쉽게 탈출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설치 중인 비상대피시설이 이런 위급 상황에 정말로 유용한지 재차 삼차 검증하면서, 필요하다면 보완도 해가면서 조속히 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 장마철에 접어든 지 열흘이 넘었다. 이젠 굳이 장마가 아니어도 언제든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질 수 있다. 지하차도 뿐만 아니라 지하주차장 건물지하층 등 문제가 될 만한 장소를 꼼꼼히 점검해 대비에 빈틈이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