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가 어제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열어 ‘부산형 빈집 정비 혁신 대책’을 마련했다. 내년 빈집 4개 동(10억 원)을 시작으로 2030년까지 50개 동을 매입할 계획이다. 시는 또 내년 구·군과 함께 빈집 180개 동(47억 원)을, 2030년까지 2000개 동(760억)을 정비하기로 했다. 모니터링체계를 구축해 빈집을 수시로 확인하고, 1년 단위로 정비계획을 수립한다. 시는 민간과 함께 부산형 주거모델을 개발, 고품격 주거단지를 조성할 방침이다. 소유자와 수요자를 연결하는 빈집은행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한다. 부산형 정비 모델을 확립하기 위해 전문가 정책포럼을 운영하고, 빈집 정비 사업을 꾸준히 이끌고 가기 위한 빈집정비단을 신설하기로 했다. 매입을 포함한 종합정비대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21일 부산시청 1층 대회의실에서 ‘부산형 빈집 정비 혁신 대책 비상경제대책회의’가 열리고 있다. 박형준 부산시장과 전문가가 빈집 정비 대책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원준 기자 windstorm@kookje.co.kr

전문가들은 빈집 문제의 근본적이고 가장 바람직한 대책으로 매입해 주변 사정에 맞게 활용하는 것을 꼽는다. 오래 걸리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평가된다. 내년 4개 동에 그치지만 이번에 매입을 시작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그동안 매입이 힘들어 빈집 정비 사업은 리모델링과 철거에 그쳤다. 시는 빈집을 매입한 후 새로운 주거형태를 갖추거나 마을주민복지센터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청년사업가에게 싸게 빌려줘 사무실이나 가게 등으로 운영할 수도 있다. 매입하면 그만큼 다양한 활용 방안이 나온다.

개인의 재산권을 지자체가 제한하기란 사실상 어려워 공공매입의 경우 그동안 백약이 무효였다. 지자체가 빈집을 강제로 매입하려면 특별법이 필요한데 미입법 상태다. 공공이 매입한다는 소문이 나면 집값은 두세 배로 뛰어 매입이 불가능했다. 공공매입을 통한 정비는 현안이지만 난제여서 역대 시장들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부산도시공사를 통한 매입임대주택사업이 있었으나 도심의 빈집이 아닌 다세대주택이나 아파트에 적용됐다. 이번 대책은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다. 한편 이탈리아에서 시행하는 ‘1유로 하우스’가 참고 사례다. 빈집을 리모델링하려는 사람이 1유로에 취득할 수 있는 제도다. 보증금 5000유로(738만 원)를 내야 하는데 이는 입주할 때 돌려받는다. 지자체는 돈 안들이고 중개만 담당하고, 빈집 주인은 빈집에 부과된 재산세 부담을 덜 수 있다.

시는 2008년부터 공·폐가 철거사업을 시작했고, 2012년부터 빈집을 리모델링해 취약계층에게 반값에 임대하는 ‘햇살둥지 사업’을 진행해왔다. 시가 빈집 정비 사업을 시작한 게 16년 전인데 그 때부터 장기적 비전을 세워 매입을 추진했다면 상당히 개선됐을 것이다. 그동안 빈집을 정비하는 데 주로 예산을 써버렸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인 공공매입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예산이 부족하다면 기금을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지자체가 빈집 정비 사업을 제대로 하도록 정부도 강제매입을 내용으로 한 특별법을 마련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