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전세사기 피해자가 한달도 안돼 123명이나 불어났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전세사기피해자지원위원회’를 열어 심의 대상에 오른 1823건 중 983건을 가결했다. 지난해 6월 이후 전세사기피해지원특별법에 근거한 위원회 판정 피해자는 전국에 2만4668명이나 된다. 이중 부산이 2679명으로 서울(6555명) 경기(5171명) 대전(3050명) 인천(3019명)에 이어 다섯번째로 많다. 경남과 울산은 각각 316명, 156명이다. 매달 100~300명씩 늘어나던 부산은 지난달까지 2556명이었으나 또 다시 100명 이상 추가됐다.

부산지역 전세사기피해자 대책위원회가 지난 6월 부산지법 동부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기 혐의로 기소된 임대인의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 국제신문 DB

악덕 임대업자에게 전세 보증금을 떼인 세입자가 잇따라 자살하면서 전세사기가 사회 문제화 하기 시작한 지 벌써 3년째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여전히 유사 범죄가 횡행하고 피해자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 9월 경찰 특별단속 결과를 보면 대략적인 패턴이 나온다. 제일 흔한 피해 주택 유형은 빌라(59.9%)와 오피스텔(31.0%)로, 둘을 합하면 90% 이상이다. 피해 연령층은 30대(37.7%)와 20대 이하(25.1%)가 62.8%를 차지한다. 피의자 유형으로는 가짜 임대인이나 임차인(37.7%)이 가장 많다. 악의를 가진 임대인과 공인중개사가 짜고 덤비면 사회초년생으로서는 당해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를 돕기 위한 국가와 지자체의 법적 제도적 장치는 적지 않게 갖춰졌다. 피해 사실을 인정받기만 하면 우선매수권을 활용해 경매나 공매에서 해당 주택을 낙찰받을 수 있고,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가 살 수도 있으며, 이사나 주택 관리 문제도 공공의 지원을 받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모두 피해가 발생한 이후의 일이다. 누군가에겐 전재산인 보증금 1억~2억 원을 전부 날릴 위기이거나 일부를 변제받지 못할 상황에서 보장된 혜택을 찾아 누리거나 법적 절차를 밟는 게 쉽지 않다. 사후 구제도 필요하지만 이런 피해를 입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는 게 더 중요한 이유다.

얼마 전 대법원이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부산 수영구 오피스텔을 포함해 9개 건물을 사들인 후 세입자 229명의 전세보증금 180억 원을 돌려주지 않아 기소된 사기범에게 징역 15년을 확정했다. 최근 문제가 된 전세사기 중 처음으로 최종심 판단이 내려진 이 사건에서 검찰 구형량인 13년을 넘어 형법상 사기죄 법정 최고형이 선고된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사기죄에 온정적인 사법부에 대한 비판이 높았다. 그런 의미에서 대법원 판결이 아직도 독버섯처럼 자라는 예비 범죄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결코 가볍지 않다. 범죄 피해를 안 입으려면 방지가 최선이다. 관련 매뉴얼을 꼼꼼하게 다듬어 공인기관을 통해 범죄 타깃 우려가 있는 연령층을 대상으로 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경제적 살인이라 불리는 사기죄에 대한 엄중한 단죄가 꾸준히 일관성 있게 이어져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