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오염을 줄이기 위한 국제협상이 무산됐다. 유엔환경계획(UNEP) 산하 플라스틱 협약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5)는 2일 178개 회원국 간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내년에 다시 모여 협의하기로 했다. 총회가 새벽 2시50분에 끝날 정도로 치열한 토론을 벌였지만 협약을 성안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강제성 있는 국제협약이 되려면 만장일치 찬성이 필요하다. 회원국이 7일 동안 구속력 있는 안을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다.

유엔환경계획 산하 플라스틱 협약 제5차 정부간 협상위원회 전체회의가 2일 벡스코에서 열리고 있다. ENB 제공

이번 회의는 화석연료에서 추출한 플라스틱 원료인 폴리머 생산 규제, 유해 플라스틱·화학물질 퇴출, 협약 이행을 위한 재원 마련 방안 등이 쟁점이었다. 대부분 국가는 폴리머 생산을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감축할 목표를 채택하자는 데 동의했다. 최대 플라스틱 생산국인 중국이 전향적 입장을 보여 성안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러나 산유국인 아랍국과 러시아 등이 생산 규제에 결사 반대하면서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등은 협상위에서 “우리는 플라스틱 오염에 반대하는 것이지 생산을 제한하려고 이 자리에 오지 않았다”며 한계선을 그었다. 러시아는 모든 국가가 수용할 수 있는 조항을 성안하자는 논리를 전개했다. 이들 때문에 협상에 진전이 없자 다수결로 하자는 안도 나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개최국 수석 대표인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미국 프랑스 중국 등 주요국 수석대표와 연쇄회담을 열고 협약 성안을 위해 뛰었다. 그는 전체회의에서 법적 구속력 있는 협약을 만들자고 제안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김완섭 환경부 장관 역시 사우디아라비아 대표와 INC 루이스 바야스 발비디에소 의장과 만나 이견 조율에 나섰다. 하지만 환경단체는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단계적 오염물질 퇴출 방안을 담은 멕시코 안과 파나마를 주축으로 한 생산 감축 지지 성명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이 이에 동참한다고 해서 대세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그만큼 ‘플라스틱 세상’에서 이를 감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환경보다 자국의 이익이 앞섰다.

유엔환경계획이 플라스틱 오염을 줄이자고 결의한 지 2년이 넘었다. 협상 시한이 올해 말이기는 하나 협상위가 내년에 다시 논의하자고 합의한 만큼 시간은 남아 있다. 대의원들은 내년 상반기 또는 7, 8월에 개최하자는 의견을 냈다. 발비디에소 의장과 협상위 사무국은 생산 감축에 반대한 산유국 설득에 힘을 모아야 하겠다. 국가별 생산량을 정하고 감축하면 인센티브를, 초과하면 페널티를 주는 방법도 있다. 생산을 감축하는 대신 태평양 도서국 등 플라스틱 오염 피해국에 재정을 지원하는 ‘패키지 딜’로 가서는 곤란하다. “우리는 부산을 낙담한 채로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고 밝힌 EU 회원국의 결의가 험난한 산을 정복하는 출발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