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불사(Too big to fail). 바둑에서 많은 돌로 구성된 대마는 활로도 많고, 여러 겹의 방어책을 쌓고 온 힘을 다해 살리기 때문에 죽기 어렵다는 경구이다. 글로벌 청산결제기관(CCP)에 대해서도 대마불사가 자주 회자되고 있다. 런던청산기관(LCH)을 필두로, 시카고상업거래소(CME Clearing), 독일 유렉스청산기관(ECAG), 일본증권청산기구(JSCC), 미국 증권청산기관(NSCC) 등이 지속적인 합병을 통해 독점 대형기관으로 성장함에 따라 파산시 금융시장에 미칠 여파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19세기 중반부터 은행의 청산기관을 벤치마크해 유럽 증권·파생상품 거래소는 각자 청산결제부문을 도입했다. 런던증권거래소(LSE)는 1874년 증권과 대금 수수 간소화를 위해 청산결제를 개시했다. 거래소와 독립된 청산기관으로는 오늘날 LCH 모태인 런던상품청산기관(LPCH)이 1888년 최초 설립되어 1990년대 중반까지 영국 내 장내파생상품 청산결제부문을 모두 병합했다. 1995년부터 장내외 주식, 환매조건부채권(RP) 등 현물거래와 이자율스와프(IRS) 등 장외파생상품까지 청산업무를 확대했다. 2001년부터 LSE와 유럽 거래소의 주식 청산부문도 병합해 세계 최대 청산결제기관으로 성장했다. 2012년부터 역내외 장외 외환파생상품의 청산까지 확대해, 원화 외환선도거래(NDF)의 LCH 청산물량도 일일 240억 달러(34조 원)에 이르고 있다. 이로 인해 국내 은행들의 LCH 청산회원 가입도 논의되고 있다. LCH는 지난 9월말 3000억 달러(KRX의 32배) 이상의 거래증거금을 보유하고 있다.

EU에서는 독일 ECAG로 주식, RP, 장내외 파생상품의 청산결제업무가 집중되고 있다. EU는 LCH에 뺏긴 역내 청산물량을 되찾기 위해 EU 소재 청산결제기관에서 거래물량의 최소 10% 이상을 청산결제해야 하는 의무도 부과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상품별로 청산기관 대형화가 진행되었다. 필라델피아(PHLX, 1870년), 뉴욕(NYSE, 1892년) 증권거래소 등은 19세기 후반부터 청산결제부문을 도입했다. 1976년에 NYSE, AMEX, 전미증권딜러협회의 청산결제부문을 합병해 증권청산기관(NSCC)을 설립하고, 이후 보스턴, LA, 시카고 등의 증권거래소 청산부문도 병합해 증권 청산업무를 집중 운영하고 있다. 주식(주가지수)옵션의 청산결제업무는 옵션청산기관(OCC)으로 집중되고 있다. 장내파생상품 청산결제는 1919년 설립된 CME 청산본부로 쏠리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BOT)가 1883년 청산결제를 먼저 도입했으나, 1919년에 설립된 CME가 2004년부터 CBOT 청산기관(BOTCC)을 병합하고 이후 뉴욕, 캔자스의 상품거래소(NYMEX, COMEX, KCBT)를 흡수합병하면서 이들의 청산결제부문도 병합했다. 2012년부터 IRS, NDF 등 장외파생상품 청산업무를 시작했으며, 내년부터 장외 미국국채와 RP의 청산업무도 수행할 예정이다.

일본도 단일 청산기관으로 집중시키고 있다. 도쿄 오사카 나고야 후쿠오카의 증권거래소에서 각자 수행하던 청산업무를 2003년 일본증권청산기구(JSCC)를 설립해 통합했으며 이후 상품거래소(TOCOM, DCE)의 청산결제부문과 장외 국채청산기관(JGBCC)도 병합했다. 2011년부터는 신용부도스와프(CDS), 엔화 IRS 등 장외파생상품 청산업무까지 확대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청산결제기관의 독점화·대형화 추세는 여러 기관에 분산된 위험을 집중, 다자간 차감결제와 위험상쇄 효과를 높이고 결제리스크를 크게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결제대상물(증권, 상품)과 자금 결제도 빠른 시간 내에 완결할 수 있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때 청산결제기관의 위험관리제도가 정부 구제금융 지원 없는 사적 부조로, 대형 금융기관 파산도 처리 가능한 능력이 입증되어 장외 금융거래의 CCP청산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 청산결제본부도 글로벌 청산결제기관처럼 익일물 금리스와프 등 장외 증권 및 파생상품으로 청산업무를 확대하고 위험관리 고도화를 통해 국내 자본시장의 결제불이행위험을 낮추어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에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