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일, 오늘은 45년 전 전두환 일파의 군사반란이 일어난 날이다. ‘하나회’라는 군부 내 사조직을 중심으로 일으킨 내란이었다. 민주주의 역사에 큰 오점을 남겼던 군부독재 시대의 망령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이 시점에 되살아나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현직 대통령이 주도한 친위쿠데타가 2024년 12월을 1979년으로 회귀시키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단시간 내 이루어낸 나라, 세계 10대 경제대국, K-팝, K-드라마, K-푸드에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절정에 이른 세계적 위상의 문화 강국, 대한민국이 한순간에 민주주의 취약, 환율인상,주가하락 등 경제신인도 하락, 외교적 위상 추락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국민의 손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척결’ ‘처단’ 등 입에 담기조차 힘든 말들을 쏟아내며 느닷없는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회에 군인이 투입되고, 방첩사가 등장하는 심야의 공포를 ‘서울의 봄’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서 목도해야만 했다. 꿈인가 생시인가, 대한민국 국민은 경악했다. 세계가 경악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피의자로 입건되고, 출국금지 되었다. 심화되고 있는 신냉전 구도의 세계정세 속에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취임으로 인한 정치군사적,경제외교적 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나라의 실질적인 헌법적 대표자가 없다는 것 자체가 가장 심각한 문제다. 조기 퇴진이 불가피하다. 이미 내란죄 우두머리로 현행범 수사를 받을 처지인 대통령이 그 자리에 계속 머무를 수 있겠는가. 국민의힘 김태호 의원은 내년 봄 ‘벚꽃 대선’을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현재의 비상 상황이 정치권의 정치공학적인 권력쟁탈의 정쟁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번 사태에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제도적 기반,국가운영 체계의 취약점이 여과없이 드러났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끔찍한 현실을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다. 승자독식의 배타적·독점적 권력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중앙집중 권력의 적나라한 폐해를 절감하고 있다. 21세기 들어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로 이어지는 대통령 중 한 명은 부정부패로 감옥살이를, 한 명은 국정농단으로 탄핵을, 이제 또 한 명이 어떤 형태든 중도 퇴진을 앞두고 있다. 5명 중 3명이 불명예로 얼룩진 대통령이라는 점은 그 개인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현행 우리 대통령제의 구조적인 결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전부터 누누이 강조했듯 과도한 대통령 권한을 적절하게 나누어 민주주의 핵심 원리인 견제와 균형이 적절하게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국무총리는 국회에서 선출해 지금과 같이 헌법적·법적 규정과 권한이 없는 정치적 수사 차원의 ‘책임총리’ 논란을 없애야 한다. 대통령의 잘못으로 직무가 정지되거나 퇴진할 경우, 대통령이 임명한 총리가 권한대행이 된다는 자체가 민주적이지 않은 권위주의적 대통령제의 단면이다. 사표방지와 과반의 지지를 통한 대표성 강화를 위해 결선투표제, 국민의 직접적인 중간 평가 및 안정적 리더십을 위해 적정한 임기를 보장하는 4년 중임제 등이 도입되어야 한다. 그리고 1표만 더 얻어도 되는 승자독식의 배타적·독점적인 단순다수대표제를 국민이 투표한 비율만큼 의석에 반영되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바꾸어 타협과 연합의 정치가 가능한 국회를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이 투표한 유효투표의 절반 가까이가 사표가 되어 국회 구성에 반영되지 않는 구조를 두고 민주주의 체계가 굳건하다고 할 수 없다.

아울러 중앙정치 중앙정부에 몰려있는 과도한 중앙집권적 정치행정체계를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에 분산하는 지방분권형 체계로 바꾸어야 한다. 수십년간 절절하게 주창해왔다시피 입법권 행정권 재정권 주민참정권 등을 보장하고 권한을 공유해야 한다. 국가운영 체계를 지방분권형, 권력분산형으로 탈바꿈시키는 기회로 삼아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내외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 수직적 ·수평적 분권을 통한 튼튼한 민주주의의 토대를 뿌리내려야 한다. 특정 학맥인맥이 나라를 뒤흔드는 전근대적인 수치가 재발하지 않으려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기초,국가운영 체계를 혁신하고 강화하는 헌법개정이 필수적이다. 퇴진의 국민 목소리에는 이런 개혁의 뜨거운 함성이 함께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