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한강 작가에 대한 2024년도 노벨문학상 시상식이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있었다. 올해 10월 한국문학과 한국 사회를 강타한 이 소식은, 한마디로 국가적 경사였다. 많은 매체가 어떻게 그 쾌거가 가능했는지를 말했기에 여기서는 몇 가지 요점만 짚어 보기로 한다. 먼저 이 상을 받기 이전에, 이미 한강이 유럽과 세계 문학계에 알려진 작가였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그것은 ‘채식주의자’라는 작품으로 세계 3대 문학상 가운데 하나로 불리는 영국의 맨부커상을 수상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 작품은 한국에서 이상문학상을 받은 후 11년이 지나면서 거의 잊혀졌다가, 맨부커상의 해외작가상을 받으면서 다시 살아난 경우다.

다음으로 세계 문학계에 수용된 효율적인 번역의 문제다. 자연히 ‘채식주의자’의 번역부터 검증할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을 번역한 영국의 데보라 스미스는 당시 26세의 젊은 여성으로 출판사 경영자였다. 필자는 그를 수년 전 세계번역가대회에서 만난 적이 있으며, 우리 글의 판독은 가능하나 말은 거의 못 하는 수준이었다. 한국어를 배운 기간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한 연유로 그의 번역은 작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옮기기보다는, 독자들이 읽기 좋도록 융통성 많은 의역(意譯)을 선택했던 것이다. 이 번역의 방식이 주효해 한강의 소설이 영국에서 읽히고 또 수상자가 된 터였다.

또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던 다른 선배 작가들과의 차별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은 이호철 황석영 조정래 이문열 등 작품이 번역돼 해외에서 많이 읽힌 작가와 한강은 제재(題材) 선택과 그것을 형상화하는 방법이 달랐다. 선배 작가들은 한강으로서는 시도해 본 적 없는, 10권 분량의 대하소설을 쓰는 기량을 가졌고 그 중심 주제는 대체로 국가적 비극이나 민족사의 동통(疼痛)을 다루었다. 그러나 한강은 그 역사 과정에서의 비극적 상흔(傷痕)을 개인의 내면으로 끌고 들어갔다. 이 방식이 ‘효자손’이 됐다. 국가적 비극은 어느 나라에나 있어 감동이 덜하지만, 구체적인 개인의 아픔은 어디서나 소통될 수 있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은 그가 운용하는 문체다. 스웨덴한림원은 수상 발표와 더불어 ‘시적 산문’이란 언사를 썼다. 문장이 치밀하고 감각적이며 서정적 서사를 담보하고 있다는 측면을 높이 샀다는 말이다. 소설 문장이 시적 서정성을 표방하고 있다면, 서사적 줄거리의 전개에 있어 활달하고 흥미를 유발하는 경향을 확립하기 어렵다. 한강의 소설이 재미있게, 또 속도감 있게 읽히지 않는 이유다. 다만 이 치열한 문장이 독특한 소설 세계를 구성하는 데 장점이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 외에도 온 세계가 K-팝이나 한류의 바람을 타고, 한국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조정하는 시기라는 환경적 이점(利點)이 있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이번의 시상이 아시아 존(Zone) 여성 작가 순번이라는 천운(天運)도 함께 했다. 만약에 남성 작가가 그 대상이었다면, 모르긴 해도 중국의 옌렌커나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가 수상하게 되었을 것이다. 옌렌커는 공산주의의 강압적 체제에 대한 저항의 의지로, 하루키는 벌써 오래전부터 세계 독서 시장을 석권한 대중적 수용력으로, 한강 보다 여러 걸음 앞서 있기 때문이다. 지난날 노벨문학상이 독재 정권이나 왜곡된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작가에게 시상된 사례를 보면, 옌렌커의 경우 확연한 설득력이 있다. 여기서도 한강은 점수를 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의 소설은 제주 4·3이나 광주 5·18을 다루었다.

한강의 수상 이후, 한국 사회에는 그 이전에 생각지도 못했던 과제 하나가 던져졌다. 곧 그의 작품을 두고 대립하기 시작한 보수와 진보의 진영논리다. 광주를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와 제주를 소재로 한 ‘작별하지 않는다’를 두고, 양 진영의 논자는 물론 일반 시민까지 격렬하게 주의 주장의 충돌을 노정(露呈)했다. 여기서 그 찬반 논리를 따질 일은 아니지만 다만 한 가지, 문학이 현실적 상황을 액면 그대로 반영하는 표현 방식에 입각해 있지 않다는 원론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누구나 세상사에 대해 자기 시각을 가질 수 있듯이, 작가 또한 그렇다. 문학에서의 정답은 언제나 하나가 아니다.

한강의 수상이라는 이 세기적 계기에서 보다 더 유의해야 할 바는, 앞으로 한국문학의 세계 무대를 향한 방향성 탐색이다. 이제 문학도 궁벽한 국가주의의 울타리를 넘어 광활한 국제 경쟁의 현장으로 나가야 한다. 이 시점에 발맞추어 들려오는 낭보(朗報)도 많다. 한국계 미국 작가 김주혜가 ‘작은 땅의 야수들’로 러시아 최고의 톨스토이문학상을 수상했는가 하면, 블랙핑크 멤버 로제의 ‘아파트’가 폭발적 수용으로 전 세계를 울리고 있다. 바라기로는 이와 같은 국제적 호기(好機)들을 통해 기반을 공고히 하고 새롭고 진취적인 문학 장려를 발양해 나감으로써, 언젠가 도래할 제2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앞당길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