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영화계에서 ‘소방관’의 흥행이 화제다. 2001년 서울 홍제동 화재 참사를 영화화한 ‘소방관’은 지난 4일 개봉해 18일 동안 240만 관객(21일 기준)을 모으며 대박 흥행을 하고 있다. 한국 영화만 보면 지난 9월 13일 개봉한 ‘베테랑2’ 이후 200만 명은커녕 100만 명을 넘은 영화가 ‘소방관’ 외에 단 한 편도 없다. 그만큼 ‘소방관’의 흥행은 대단한 것이다.

사실 ‘소방관’은 개봉 전 커다란 리스크를 안고 있었다. 음주운전 사건으로 활동을 중단한 곽도원이 주연을 맡았기 때문이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거는 소방관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그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았다’는 진심이 희석될 수 있었다. 연출을 맡은 곽경택 감독은 “곽도원이 원망스럽다”는 말까지 하며 영화 자체로만 봐주길 바랐고, 1200명의 소방관과 가족들을 초대한 특별 시사를 통해 진심을 알렸다. 곽 감독과 배우들이 열심히 뛰어다니며 영화의 진정성을 홍보한 덕분에 분위기는 긍정적으로 돌아서고 있었다.

그런데 개봉을 앞두고 전혀 예상치 못한 날벼락이 떨어졌다. 개봉 하루 전인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이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국민의 관심은 비상계엄으로 쏠렸고, ‘소방관’뿐만 아니라 영화 자체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개봉일인 4일, 예상을 깨고 8만 명이라는 반전의 성적을 보였다. 오히려 비상계엄 사태가 ‘소방관’ 흥행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한 셈이다. 대중은 비상계엄으로 인해 민주주의를 지켜주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돌아보게 됐고, 소방관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이 더 커졌다. 이는 관람객 리뷰나 SNS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소방관’에 담긴 진정성이 입소문 나면서 개봉 2주 차에는 주말 이틀 동안 52만 관객이 찾는 역주행 현상이 일어났다. ‘소방관’은 유료 관람 티켓당 119원을 현금 기부하는 ‘119원 기부 챌린지’를 진행중이다. 2025년 개원 예정인 국립소방병원을 위해 후원할 예정이다. 200만 명 관객을 돌파해 2억3800만 원 기부가 확정됐고, 현재 3억 원 기부 목표를 향해 힘차게 가고 있다.

한편 24일 안중근 장군과 독립군의 하얼빈 의거 여정을 그린 영화 ‘하얼빈’이 개봉한다. 비상계엄 사태로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자긍심과 민주주의의 가치관이 높아진 이 시기에 역사를 통해 현재를 반추할 수 있는 ‘하얼빈’이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기대된다.

이원 서울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