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경제 외교 안보 등 거의 전 분야에 걸쳐 대변화를 몰고올 분기점이 바로 눈앞에 닥친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이후 사실상 공백 상태에 빠진 한국 정부는 어떤 대책을 갖고 있는지 불안하다. 미국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의 한국과 조만간 고위급 대면외교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히긴 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곧 끝날 바이든 정부와의 관계일 뿐 새 정부와는 어떤 대화나 협상 조짐도 감지되지 않는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민관정을 통틀어 한국 인사로는 처음으로 트럼프 당선인과 면담에 성공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부 대응력의 부진과 한계만 확인시켰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21일(현지시간) 미국 애틀랜타 국제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귀국하기 직전 한국 언론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 16일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자택인 미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이날 오전까지 머물렀고, 트럼프 당선인과 만나 10∼15분간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현재 트럼프 당선인의 자택이 있는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각국 정부 관료와 기업인들이 트럼프를 만나기 위해 모여든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애초 취임 전에는 어느 정상과도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캐나다 총리, 프랑스 대통령과 회동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요청을 거절하다 아베 전 총리 부인 아키에 여사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만난 후엔 취임 전 회동 일정을 잡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최근 당선 후 첫 기자회견에서 중국 일본 북한을 언급하면서 한국은 뺐다. 한국은 일본에 앞서 트럼프 당선인과 정상간 전화통화를 했으나, 어처구니 없는 ‘12·3 비상계엄’ 사태로 완전히 뒤로 밀린 형국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은 우리에게 위기일 수도 기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것 역시 정부의 역량에 달렸다. 트럼프 당선인 머리 속 한국은 ‘대미 무역에서 엄청난 흑자를 내는 잘 사는 나라’라는 인식이 뚜렷하다.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어떤 종류의 혜택도 급격하게 축소하거나 없애려 할 게 분명하다.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 기업에 지급하기로 약속했던 반도체 보조금이 대표적이다. 방위비 분담금의 파격적 인상, 10~20% 보편 관세 부과 등도 거의 확실하다. 문제는 이런 트럼프 당선인과 마주앉을 주체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차기 정부가 전열을 정비해 협상하려면 최소 1년은 걸린다는 게 외교가 전망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우원식 국회의장의 제안을 받아들여 여야정 국정협의체를 조만간 띄우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런 결정이 나온 지 사흘도 안돼 민주당은 자신들이 주도하는 쌍특검(내란특검·김건희특검)을 받지 않으면 한 대행을 탄핵하겠다고 벼른다. 트럼프발 퍼펙트 스톰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여야정이 힘을 합쳐도 부족한데 당리당략에만 빠져 트럼프 2기 대응의 골든타임을 그냥 흘려보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3개월 내에 주요 정책을 확정하고 강력하게 밀어붙일 태세다. 하지만 정부를 보나, 정치권을 보나, 믿을 만한 구석이라곤 없는 바람 앞의 등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