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최초의 부랑인 집단수용시설이었던 영화숙·재생원 사건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나선다. 영화숙·재생원피해생존자협의회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부산지부와 국가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위수임 계약을 체결했다고 최근 밝혔다. 현재 소송 참여 인원은 60여 명이지만 최대 160여 명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1960~70년대 영화숙·재생원에서 감금 폭행 굶주림 강제노역 성폭력 등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인권유린에 시달렸다. 앞서 부산 해운대에 있었던 아동보육시설 덕성원 피해자들이 국가와 부산시 상대 손배소를 제기한 바 있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부랑인을 관리한다는 명분으로 저지른 범죄에 가까운 행위가 민사상 어떤 법적 판단을 받을지 주목된다.

부산의 부랑인 집단수용시설이었던 영화숙·재생원 사건 피해자 손석주(왼쪽 두번째) 씨가 지난 7월 스위스 제네바 유엔 사무소 브로큰체어 앞에서 한국의 집단수용시설 피해생존자를 대표해 참상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시민사회모임 제공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아동 청소년 성인이 누군가의 손에 붙들려 생지옥 같은 시설에 수용되고, 최소 수년 길게는 십수년간 착취당한 게 집단수용시설 피해의 골간이다. 그 책임은 힘없이 끌려간 당사자에 있지 않다. 이런 시설이 운영되도록 장려 혹은 묵인하고 수용자 발굴에 적극 개입한 국가다. 수십년 전 폐쇄된 집단수용시설의 운영방식이나 수용자 관련 자료가 제대로 남아있을 리 없고 생존자 역시 많지 않다. 파편적으로 남은 기록도 불완전하다. 그러나 일생을 트라우마에 시달려야했던 피해자들의 생생하고 일관된 증언은 여전히 절규하고 메아리친다. 가장 직접적이고도 분명한 증거다.

문제는 속도다. 영화숙·재생원 보다 먼저 세상에 알려진 형제복지원 사건의 경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가 국가 폭력으로 공식 인정하기까지도 상당 기간이 소요됐는데, 이를 바탕으로 국가 상대 손배소를 제기해 1심 판단을 받기까지 또 2년 6개월이나 걸렸다. 정부가 같은 국가기관인 진화위의 조사 내용까지 부인 또는 재검증하면서 소송을 지연시켰기 때문이다. 아직 항소심이 진행 중이어서 최종심까지 끝나 피해자들이 실제 배상을 받으려면 앞으로 몇년이 더 걸릴 지 모른다. 영화숙·재생원 피해자들은 형제복지원보다 연령대가 높아 이 사건이 공론화되기 전 이미 작고한 사람이 적지 않은데, 소송 기간이 길어지면 직접적인 피해 구제는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영화숙·재생원 사건에 관한 진화위 조사 결과는 다음달께 나온다. 지금까지 조사 과정으로 미뤄 국가 책임을 인정하는 쪽으로 결론날 확률이 높다. 진화위 조사는 피해자 증언, 관련 서류, 현장 조사 등을 거쳐 입체적인 방식으로 이뤄진다. 정부는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는 이유 등으로 시간 끌기만 할 것이 아니라, 진화위 조사 결과를 100% 수용하는 자세로 소송에 임해야 할 것이다. 지난 여름 영화숙·재생원 피해자의 호소는 스위스 제네바 유엔사무소 앞에서도 울려 퍼졌다. 진화위 조사와 손배소 결과에 세계가 주목한다고 봐야 한다. 국가는 하루라도 빨리 피해자 눈물을 닦아줄 방법을 찾는 게 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