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이웃 80대 할머니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나훈아가 죽었단다.” 평소 유튜브에서 트로트를 즐겨 듣는 분인데 갑자기 이런 내용의 긴급 뉴스가 뜨더라는 것이다. 할머니 휴대전화를 열어 보니 가수의 사진과 자극적인 제목으로 구성된 썸네일이 떠있기는 했다.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다. 다행히 이 정도는 진실 여부를 확인해 정보를 교정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 사회적 신념에 관한 문제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유튜브 시청자들은 알고리즘 추천에 따라 취향에 맞는 영상을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고, 그런 편식의 결과 편향성이 더 강해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걸러진 정보의 거품, 일명 ‘필터 버블’에 갇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이 사실을 못 느낀다는 게 훨씬 심각하다.

김진표 전 국회의장이 지난 여름 회고록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음모론 신봉설을 언급할 때만 해도 일국의 대통령이 그런 유치한 생각을 할 리 없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직후인 2022년 12월 김 전 의장과 독대자리에서 “특정 세력에 의해 유도되고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당시 극우 유튜브 채널에서는 누군가 기름을 뿌렸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억측이 난무하던 참이었다.

윤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과 12·14 탄핵을 전후해 발표한 다섯 차례 대국민담화 중 하이라이트는 지난 12일 나온 네 번째다. 특히 비상계엄 선포의 불가피한 사유 중 하나로 부정선거 의혹을 지목하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시스템이 허술해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한 대목이다. 그동안 보수 유튜버들이 끈질기게 주장해온 ‘부정선거론’과 일맥 상통한다. 윤 대통령은 다섯번째 담화를 끝으로 11일째 침묵하며 변호인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입장을 내고 있다. 23일엔 “대통령이 답답해한다”는 전언으로 국민 염장을 한번 더 질렀다.

“누구나 현실을 보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2000년 전 확증편향의 위험성을 경고한 로마 황제 카이사르의 말이다. 검경 수사로 서서히 맞춰지는 계엄 퍼즐에는 성범죄로 전역한 민간인 신분의 전직 군인이 햄버거 가게에서 계엄을 사전 모의하고, 전역 후 자신이 운영하는 점집에서 계엄 실행과 선관위 장악 계획을 짠 정황이 등장한다. 초현실적인데다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다. 우파는 우파 유튜브만, 좌파는 좌파 유튜브만 소비하며 끼리끼리 구축한 세계의 거품 속에서 산다. 이것이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윤 대통령의 정신세계를 추론하는 단초다.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