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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경제 항산항심] 오징어게임: 선택과 공정의 함정

안병민 열린비즈랩 대표

  • 안병민 열린비즈랩 대표
  •  |   입력 : 2024-12-30 19:22:32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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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앞에 두 개의 문이 놓여 있다. 한쪽은 ‘생존’의 문, 다른 쪽은 ‘죽음’의 문이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 선택은 자유인가, 강요인가? 드라마 ‘오징어게임’은 선택이라는 이름 아래 구조적 강요가 작동하는 현대사회를 날카롭게 고발한다. 생존 게임이라는 비극적 은유를 통해 우리 모두가 직면하고 있는 선택 경쟁 생존의 구조적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선택인가 강요인가?] “게임 참가 여부는 자유입니다.” 참가자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이 말 뒤에 숨겨진 아이러니.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절박한 참가자들에게 다른 길은 없다. ‘게임 참가’ 아니면 ‘천 길 낭떠러지’. 선택의 외피를 쓴 구조적 강요다. 자유와 강요 사이의 모순이다.

극중 설정만이 아니다. 우리 역시 ‘나의 선택’이라 믿는 강요된 결정을 매일 한다. 생계 유지를 위해, 혹은 사회적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내리는 선택들. 그 모든 결정은 얼마나 자발적인가?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무언의 압력은 선택지를 좁히고, 정해진 답을 강요한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현실과 선택지가 없는 삶의 절망. 이는 드라마 속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공정이라는 이름의 착시] 게임의 우승자는 모든 것을 얻는다. 하지만 승리가 개인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진다고 믿는 것은 착각이다. 생각지도 못한 우연과 운, 타인의 희생, 시스템적 유리함 등 다양한 변수들이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있다. 공정으로 포장된, 능력주의의 함정이다.

현대사회에서도 능력주의는 종종 기만적이다. 사람들은 동일한 출발선에 서있지 않다. 부모의 재력, 교육 기회, 사회적 배경 등, 개인의 성공을 좌우하는 건 능력만이 아니다. 같은 트랙에서 달리는 듯 보이지만, 어떤 이는 아스팔트 위에서, 어떤 이는 진흙탕 속에서 달린다. 승자는 자기 능력을 과신하고, 패자는 자신의 무능력을 탓하며 좌절한다. ‘왜곡된 능력주의’다. 어디까지가 내 ‘능력’이고, 어디까지가 내 ‘성취’일까? 현대사회의 경쟁은 얼마나 공정한가?

[경쟁의 끝은 어디인가?] 드라마 속 참가자들, 처음에는 협력한다. 그러나 이내 배신으로 치닫는다. ‘죽이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 극단적 경쟁에 내몰려서다. 내가 살려면 친구를, 동료를 죽여야 한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적 상황 속에서 인간성은 속절없이 무너진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 현대 사회의 무한경쟁 구조와 놀랍도록 닮았다.

성과 중심 사회는 끝없이 사람을 누르고 으른다. 상대를 밟고 일어서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핏빛 환상을 조장한다. 오징어게임은 인간 존엄이 파괴된, 무한경쟁의 종착지를 보여준다. 승자조차도 깊은 상처로 얼룩진 비극적 현실이다. 모두가 패자가 되는 악마적 시공간이다.

[돈인가, 인간인가?] 오징어게임은 ‘인간 경마’다. VIP들은 참가자들의 목숨을 상금으로 치환한다. 판돈을 걸고 그들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조롱하며 즐긴다. 현대 사회에서도 돈은 인간의 가치를 대체하며 모든 것을 지배한다. 생존조차 자본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돈이 곧 인간 존엄을 결정한다.

VIP들은 단지 드라마 속 상상이 아니다. 자본으로 의료, 교육, 심지어 생명까지 사고파는 잔혹한 현실의 은유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인간은 단순한 숫자로 전락한다. 돈이 곧 인격이다. 하지만 456억 원의 상금을 받고도 다시 목숨 걸고 지옥의 게임장으로 되돌아가는 주인공이 웅변한다. “돈은 우리 삶을 구원할 수 없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은 단순한 허구가 아니다. 게임 속 ‘말’로 살고 있는 우리를 돌아보게 만드는 쨍한 거울이다. 왜곡된 능력주의와 무한경쟁, 황금만능주의와 불평등의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이 게임을 끝내야 한다. 답은 연대와 협력에 있다. 경쟁을 넘어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고, 함께 나아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남의 불행 위에 쌓아 올린 승리의 깃발이 삶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삶과 인간은 그 자체로 귀(貴)하다.” 이 잔인한 게임을 멈출 수 있는 실천의 시작점이다.

시스템 속 ‘말’로 남을 것인가, 게임을 멈출 ‘사람’이 될 것인가. 드라마가 끝났다고 우리의 게임마저 끝난 것은 아니다. 대학 동기 황동혁 감독이 던지는 묵직한 화두에 보태는 작은 생각 한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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