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누구나 한 번쯤 야심 찬 계획을 세운다. 그동안 불규칙한 생활 때문에 몸이 망가진 사람이라면 유산소·무산소 운동을 통해 ‘몸짱’이 되길 바란다. 외국인과 유창하게 대화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회화 연습에 이전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할 터다. 물론 앞서 수도 없이 겪었겠지만 새해 결심이 일 년 내내 이어지기는 아주 어렵다. 대개는 연말이 되면 자신의 끈기가 아주 부족했구나라고 자책한다. 그래도 뭐 어떤가. 시작이 반이라고 시도하지 않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
지역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부산 시민이라면 새해에는 전년에 비해 모든 면에서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대한다. 특히 먹고 사는 문제가 직결된 경제 분야에 대해서는 이런 바람이 더 절실하다. 근데 안타깝게도 전망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말 부산상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251개 제조기업의 올해 1분기 제조업 경기전망지수(BSI)는 66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가 덮쳤던 2020년 4분기의 53 이후 가장 낮다. 중소기업중앙회 부산·울산본부가 진행한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한편에서는 최근 발표된 각종 통계를 근거로 새해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부산의 미래가 어두울 수 있다는 걱정을 한다. 2023년 부산의 실질 지역내총생산(GRDP)을 보면 103조2840억 원으로 전년의 102조4980억 원보다 고작 0.8% 늘었다. 특히 1인당 GRDP는 3476만 원으로 전국 17개 시·도 중 꼴찌에서 두 번째였다. 부산 가구의 평균 연 소득은 6259만 원으로 8대 특별·광역시 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수치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2023년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상황이 그렇다면 올해에도 큰 개선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이쯤 되면 어떤 이들은 왜 굳이 부정적인 수치만을 뽑아내 지역사회를 깎아내리려 하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경제가 좋지 않은 것은 전국적인 현상이 아니냐는 논리다. 틀린 주장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부나 지자체의 책임이 덮어져서는 안 된다. 당연히 정부는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더 큰 노력을 해야 한다. 부산시도 지역 특성에 맞는 전략 수립으로 위기를 헤쳐나가야 한다. 세상 흐름이 그런 것을 어떻게 하느냐며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올 한 해 동안 부산을 활성화할 요인은 생각보다 많다. 잘 활용하면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선 부산을 동남권 관문공항으로 만들 가덕도신공항 부지 조성 공사는 하반기에 시작된다. 사업을 맡을 현대건설 연합체에는 부산 기업도 10개 사가 참여한다. 전체 지분율은 낮지만 국토교통부, 시공사 등과의 협의를 거치면 일감을 더 늘릴 수 있다. 이와 관련, 국토부·해수부·부산·울산·경남은 지난달 20일 맺은 업무협약 때 부울경 기업 참여 확대, 지역 인력·장비·자재 사용 등을 통해 지역경제에 직접적인 혜택이 제공될 수 있게 힘을 모으기로 했다. 연결 도로와 접근철도 개설 공사도 올해 발주한다.
이르면 올해 1월 중에는 부산의 도심을 확 바꿀 철도 지하화 선도지구 지정이 예정되어 있다. 부산은 11.7㎞(경부선 구포~가야차량기지 8.9㎞·부산진역~부산역 2.8㎞)를 대상지로 확정해 국토부에 사업 제안서를 제출했다. 철도를 지하로 옮긴 뒤 기존 부지를 복합개발하는 것이 핵심이다.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여건을 고려할 때 부산이 선도지구가 되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예상한다. 이럴 경우 오랫동안 철도 때문에 낙후됐던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고 도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만들어진다.
이밖에 부산의 동남권 방사선 의·과학 일반산단, 동부산 E-PARK 일반산단, 강서구 부산·진해 경제자유구역 미음지구는 최근 현 정부가 중점적으로 진행 중인 ‘기회발전특구’로 지정됐다. 또 올해부터는 현재 세계 4위인 부산항의 항만 경쟁력을 2032년까지 3위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계획도 본격화된다. 글로벌 허브·스마트 메가포트 조성, 항만물류 네트워크 강화로 물동량 창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항만산업 생태 구축이 3대 핵심 과제로 책정됐다.
너무 흔한 말이기는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다. 여러 가지 상황이 어려운 것은 분명하나 지역사회에 주어진 여건을 최대한 활용, 부산이 가진 저력을 발휘한다면 넘지 못할 산은 없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부산시가 지난해 내놓은 2025년 업무 계획은 적절하다. 시는 ▷미래 혁신 물류거점 ▷디지털 혁신·금융창업 ▷저탄소 그린·시민 안전 시민 행복·문화·복지 등 5대 분야에 시정을 집중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과제는 민관 협력을 통한 철저한 추진이다. 명실상부한 국내 제2 도시로서의 부산 위상은 겉보기가 그럴싸한 말로만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염창현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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