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J중공업이 지난해 4조7000억 원에 달하는 수주 실적을 거뒀다. 조선 부문에서 전년 대비 300% 증가한 1조7500억 원 규모의 일감을 따내는 등 전년 연매출(2조1621억 원)을 2배 이상 뛰어넘은 성과를 보인 것이다. 옛 한진중공업 시절을 포함해 창사 이래 최고 수주액 기록은 우울한 전망이 가득한 부산 경제에 단비 같은 소식이다.

영도구 HJ중공업 조선소 상선 작업구역 도크 전경. 이원준 기자

HJ중공업 영도조선소는 1937년 국내 첫 철강 조선사로 설립된 이래 우리나라가 세계 1위 조선강국으로 성장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조선·해운 시장 위기로 자회사 필리핀 수빅조선소가 휘청거렸다. 모기업인 한진중공업은 2016년 채권단 자율협약을, 수빅조선소는 2019년 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주요 자산 매각, 임직원들의 임금동결과 급여 반납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 끝에 2021년 동부건설을 주축으로 하는 컨소시엄을 새 주인으로 맞아 HJ중공업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HJ중공업 부활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특화된 기술력을 강화하고 신기술을 개발한 덕이다. HJ중공업은 1972년 최초 국산 경비정인 ‘학생호’ 건조를 시작으로 각종 고속경비함, 초계함, 고속상륙정 등을 건조하며 해군 함정 역사와 궤를 같이 했다. 2002년엔 국내 첫 대형수송함 ‘독도함’을 100% 자체 설계해 건조했다. 중소형 규모 방위산업 선박 분야에서는 독보적 경쟁력으로 수주액을 늘려갔다. HJ중공업이 미래를 내다보고 혁신을 이어간 것도 높게 평가해야 한다. 특수선 위주로만 수주하던 경영 방식에서 벗어나 MRO(유지·보수·정비) 시장을 개척하고 상선인 컨테이너선을 수주하는 등 사업 다각화에 힘썼다. 국제해사기구가 2050년까지 선박 탄소 배출량 제로 달성을 공식화하면서 회사 측은 메탄올·암모니아 선박 등 친환경 선박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친환경 선박은 기술 개발 벽이 높아 중국이 따라오기 힘들다고 한다. 이런 노력 끝에 조선업의 장기 불황이 걷히면서 HJ중공업이 재기에 성공한 것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선박 MRO 분야에서 HJ중공업을 비롯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등이 큰 수혜를 볼 전망이다. 미 해군 함정 수주 가능성도 높아졌다. 조선소가 밀집한 부산 울산 경남 경제에 온기가 확산할 수 있다. 특히 조선기자재 산업이 밀집한 부산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HJ중공업 사례에서 보듯 부산 경제는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고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전환이 요구된다. 조선기자재 분야도 과거와 달리 친환경 부품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 르노그룹이 부산공장을 글로벌 전기차 생산기지로 낙점한 것도 주목해야 하겠다. 내연자동차 부품 기업은 친환경 전기차 양산에 걸맞은 변화를 서둘러야 한다. 기업은 인재와 역량을 키우고 기술 혁신을 위한 투자에 나서야 마땅하다. 부산시는 선박·자동차·항공 등 기존 산업을 고도화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