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밤 11시, 대구에서 연말 모임을 마치고 부산행 기차를 타러 가던 길 계엄이 선포됐다. 황당함에 웃음이 나다가 대통령의 계엄선포 영상을 보곤 현실임을 자각했다. 그날의 마지막 인사는 ‘일단 오늘 밤 안전한 귀가’를 기원하는 말로 끝맺어졌다.
밤 11시, 대구에서 부산까지 한시간 반, 휴대폰 배터리 5% 그리고 계엄. 별문제 없는 일상에 계엄이 더해지니 모든 게 불안했다. 그나마 배터리가 남은 노트북을 켜고 기차 안 와이파이에 기대어 부산으로 향하는 1시간여 동안 유튜브 생방송, 뉴스속보, SNS 등을 실시간으로 살펴보며 상황을 인지하려 애썼다.
나는 집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는데, 영상 속 시민은 국회로 달려가고 있었다. ‘뭘 해야할까. 할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막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야하나. 연말 일도 많은데 왜 하필 지금인가’ 혼란스러웠다. 군복무 중인 동생에게서는 ‘비상소집’이라는 메시지가 왔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집에 도착해 뜬 눈으로 실시간 소식을 보다 지쳐 잠들곤, 아침에 계엄해제 소식을 듣고 안도했다.
계엄 2일차인 12월 4일 오전 7시, 서면으로 향했다. 대통령을 비롯, 무책임한 이들의 행보를 두고 뉴스 기사만을 보며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함께 할 동료들을 모았고, 급히 뽑은 현수막을 다이소 커텐 봉에 연결해 깃대를 들고 나섰다. 추모 집회를 제외하곤, 첫 집회라 무척 긴장했다.
고등학생 때는 세월호 참사를, 20대 초반에는 이태원 참사를 경험하며,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구호와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감각을 곤두세웠지만, 이는 내 몸을 스스로 지키기 위한 위험 신호로 머물렀다. 집회까지 나서지 못했던 이유를 굳이 꼽아보자면 고3수험생이라는 시기, 현장과의 먼 거리, 행동을 제안하는 사람들이 곁에 없던 환경 등이 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집회는 ‘투쟁’이 먼저 떠오르는 현장으로 내게 꽤나 높은 문턱으로 자리했었다.
엉성한 깃발과 함께 한 첫 집회, 함께 한 동료들과 핫팩 방석 피켓, 그리고 누군가의 선창. 저마다의 다정한 안내 덕에 편안히 어울렸다. 그 덕에 외쳤다. 그렇게 집회는 나도 함께 할 수 있는 현장이 되었다.
12월 7일 오후 2시, 국회로 향했다. 윤석열퇴진 청년 사전집회와 본집회에 함께 했다. 부산사람으로 부산에서 목소리 내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머뭇대다, 동료의 말에 단번에 마음을 정했다. “서원! 우리 같은 경험을 해보자” 너무나 설득되는 말이었다. 재빨리 기차표를 구해 서울로 향했다. 오전 일찍 서울역으로 마중나온 동료와 함께 방석을 사고, 간식을 사고, 생각보다 추운 날씨에 타이츠도 사 신었다. 집회 전 카페에 앉아 우리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함께 머리 맞대어 발언문도 작성했다.
광장에서 외쳤다. “비록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불평등으로 가득하지만, 우리는 윤석열 정부처럼 불평등한 제도를 바로잡기 위해 부당한 방법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리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시민과 함께 광장이라는 민주주의의 터전에서 해답을 찾아갈 것”이라고 말이다.
사전집회를 마치고, 본집회에 합류했다. 엄청난 인파에 휴대폰 데이터조차 터지지 않는 현장이었지만, 펄럭이는 깃발 아래 남녀노소 세대 의제를 막론하고 질서정연하게 모여 앉았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전국 각지의 동료들을 집회에서 만나 얼굴 보고 연말 안부도 나눴다. 주변을 돌아보며, 우리가 비록 지금은 추운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있고, 오랜 시간에 걸쳐 해결할 문제들이 산재한 걸 알지만, 광장으로 달려나온 시민과 동료가 있기에 잠시 뒤로 후퇴하더라도 또다시 나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돌아오는 길 “우리 같은 경험을 해보자”고 말해준 동료가 참 고마웠다. 누군가가 ‘집회 나가는 게 무슨 큰 일이야, 그런다고 안바뀌어’ 말하더라도, ‘세상이 안 바뀌어도 우리는 당신이 결코 가질 수 없는 시간을 함께 했어, 궁금하면 너도 나와보든지’라고 말할 자신감이 생겼다 할까.
지난해 12월 14일 탄핵안 가결을 거쳐 1월 현재, 내란수괴 윤석열은 구속됐다. 모두의 덕이다. 지치기 쉽지만 그렇기에 서로에게 자주 손 내밀며, 새로운 사회를 향해 즐겁게 공동의 경험을 쌓아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