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기간 부산에서 아찔한 항공기 화재가 발생했다. 지난 28일 밤 10시26분 김해공항 주기장에 대기 중이던 홍콩행 에어부산 BX391편에서 불이 나 꼬리부터 조종석까지 동체 윗부분이 전소됐다. 지난달 29일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한달 만에 또 항공기 사고가 터진 것이다. 승객 등에 따르면 기내 뒤쪽 수화물 선반에서 ‘타닥타닥’ 소리와 함께 불똥이 떨어졌고 순식간에 연기와 불길이 번졌다. 비행기 안에는 승객과 승무원 176명이 타고 있었는데 다행히 일부 경상자가 있을 뿐 전원 비상 탈출에 성공하기는 했다. 하지만 당시 초속 10ｍ 강풍이 불었고 양쪽 날개 쪽에는 항공유가 가득했다. 지연 없이 비행기가 정시 이륙한 후 하늘에서 일이 벌어졌다면 어떤 결과를 낳았을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30일 오전 부산 강서구 김해국제공항에서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와 부산경찰청, 부산소방재난본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화재 합동 감식을 앞두고 안정성 확보를 위한 현장 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 28일 오후 10시 15분께 김해공항 주기장에서 이륙을 준비하던 홍콩행 에어부산 항공기에서 불이 나 승객과 승무원 등 176명이 비상 탈출했다. 연합뉴스

당일 긴박했던 상황은 반쯤 불에 탄 항공기 잔해가 충분히 말해준다.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항철위)의 1차 점검에서 엔진이나 날개에서는 손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수 승객의 증언대로 기내 선반에서 생긴 불씨가 발화점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누군가 짐과 함께 넣어둔 보조배터리나 전자기기 등이 과열하면서 불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보조배터리의 경우 실제로 여러 차례 비행기에서 문제를 일으킨 바 있다. 에어부산만 해도 지난달 탑승객이 손에 들고 있던 보조배터리에서 불이 나는 사고를 겪었다. 배터리는 종류와 성분에 따라 기내 반입 여부가 엄격히 제한된다. 만약 규정을 어기고 탑승객이 반입했고 항공사는 이를 미처 걸러내지 못했다면 사고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들 수 있다.

이번 화재는 사고 자체 못지 않게 승무원들의 대처도 도마에 올랐다. 안내방송, 대피, 화재 진압 등이 일사불란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게 승객 대다수의 주장이다. 불꽃이 시작된 선반 근처 승객에게 피하라는 안내도 없이 승무원이 소화기로 불을 끄려 하는가 하면, 연기가 차오르는데도 안내방송은 없었고, 승무원 대신 승객이 비상문을 열어 서로 탈출을 도와주는 상황이 전개됐다는 것이다. 여러 정황에 관련해서는 승객과 승무원의 말이 다르긴 하다. 그러나 질서 있는 안내나 대처가 정말 없었다면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에어부산 사고는 정부가 제주항공 참사 이후 저비용항공사(LCC) 안전 강화 방안을 논의하는 와중에 발생했다. LCC라고 무조건 안전관리에 미흡하다고 몰아세워서는 안된다. 그러나 정비인력 부족 등 쇄신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끝의 소홀함이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게 항공기 사고의 특징이다. 항철위는 블랙박스를 수거한 데 이어 소방 경찰 등과 합동감식을 벌인다. 화인을 밝혀 원인 제공자에게 철저히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 정부가 기내 반입 물품에 관한 규정 자체를 손봐야 할 수도 있다. 항공사 역시 재난 대응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재점검의 계기로 삼아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