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같은 온라인 업체 때문에 망했어요. 매장을 통째로 날렸는데도 오히려 홀가분해요.” 지인의 아들은 모든 걸 체념했는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툭 내뱉는다. 아등바등 버틴 세월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위로랍시고 한 마디조차 할 수 없다. 매장은 텅 빈 진열대와 작동을 멈춘 여러 대의 냉동고, 풀 죽어 축 늘어진 채소 더미 너머엔 아직 회수하지 못한 납품업체의 상품들이 널브러져 있다. 시세 10억 원대가 넘는다는 매장의 풍비박산 현장이다.
설 명절이 끝나자마자 들려온 한 지인의 파산 소식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필자는 1997년, 해운대에서 유통업을 시작하며 지인과 인연을 맺었다. 2008년쯤 대형유통기업들이 골목으로 파고들면서 전통시장 납품업체 등과 함께 상권 지키기 운동에 나섰다. 세월이 흐르자 함께 힘을 모았던 지인은 이마트몰 등을 이용해 2.5t 트럭 한 차 분량을 정기적으로 직송 받았다. 지역 상권을 살리자고 나섰는데 되레 납품업체들이 취급하는 제품은 대형유통업체를 통해 매입 받는 상품이었다. 지인은 매장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편이라 했지만, 납품업체들은 그 처사에 ‘배신자’라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서글픈 우리의 자화상에서 오는 속상함은 하늘만큼이었다.
대형유통기업으로 인해 동네 상권들은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지인도 극한의 사업 환경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쓰러지더니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 매장은 아들에게 맡겨져 십여 년간 운영됐다. 이후 공격적인 영업을 하는 듯하더니 코로나19 이후 급속하게 성장한 온라인 업체에 매출을 빼앗겼다. 더는 감당할 수 없는 부채에 파산을 결정하며 아들이 준비한 건 화물 운송 자격증이란다. 거대 온라인 업체만 살아남으니 어쩔 수 없는 최후의 먹거리 수단이라나. 온라인 업체 때문에 부도가 났다고 하면서 준비한 게 그 업체의 40세 택배 근로자라니 이 얼마나 기구한 운명인가.
부인은 “걷지도 못하고 알아듣기도 힘든 옹알이로 말하는 병을 앓고 있지만, 남편의 유일한 낙은 매장에 나오는 거다. 주간보호센터에 가지 않으려고 버틸 땐 매장에 가자고 하면 곧장 나서려 한다. 평생을 바친 매장을 정리하는 모습만은 도저히 보일 수가 없었다”며 울컥한 마음을 삼킨다.
십여 명에 달하던 매장직원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지만 당장 구할 직장이 없으니 대부분은 쉴 수밖에 없다. 납품업체들은 회수한 제품 외는 미수금을 청산할 방법이 없다면서 모든 걸 잃은 지인의 고통에 아파할 여력조차 없다. 라면류를 납품하는 한 업체 대표는 “많은 거래처가 폐업하거나 대기업에 넘어가 사업성이 전혀 없는데도 당장 먹고 살길 없는 50대라서 하루하루가 막막하다”며 넋두리를 해댔다.
설 명절 직전 거제시장 등 연제구 관내 6곳의 전통시장을 둘러봤다. 명절 하루 전인데도 손님이 없으니 빈손으로 나오기 민망할 정도로 시장이 조용하다. 임시공휴일 지정으로 역대급 연휴임에도 내수진작 효과를 전혀 느낄 수 없다. 생선을 다듬던 할머니는 “공휴일 늘려봤자 해외여행만 부추겨”라며 속앓이한다. 상인들의 또 다른 불만은 설 명절 행사다. 부산시는 지난달 5일간 14개 전통시장에서 국산 농·축·수산물을 구매하면 구매금액의 최대 30%를 온누리상품권으로 돌려주는 행사를 했다. “큰 시장에만 특혜를 주니 근처에 사는 단골조차 큰 시장으로 가버린다”는 불만이 가득하다. 골목상권은 온누리상품권을 취급할 수 없어 손님을 내보낼 때 서러움이 생긴다. “차별정책에 분노가 치밀어 당장이라도 장사를 때려치우고 싶다”던 수영구 골목 가게 대표 이숙경 씨의 말이 귓전에서 맴돌았다.
12·3 계엄령 선포에 이은 탄핵정국으로 역대 최악의 경기에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잇따른다. 장기 불황에 이념의 분열정치가 자영업자의 삶을 극도로 망가뜨리고 있다. 부산은 자영업자의 도시지만, 자영업자들은 어느 정책에도 효능감을 느낄 수 없다. 폐업한 자영업자들로 빈 상가는 늘어가고 청년은 떠나가는 부산을 살리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더는 늦추면 안 된다. 온라인 업체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골목상권 깊숙한 가게까지 단비를 뿌릴 수 있는 정책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