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에관한특별법이 27일 국회를 통과했다. 1978년 국내 첫 원자력발전소인 고리원전이 상업운전을 시작한 지 47년 만에 고준위 방폐물 영구처분장 건설을 위한 법적 토대가 마련됐다. 고준위특별법은 정부가 2050년 이전에 중간저장시설을, 2060년 이전에 영구처분시설을 운영하라고 일정을 규정했다. 또 영구처분장 선정을 위한 고준위 방폐물 관리위원회 설치·운영,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 부지 선정 시 원자력안전위원회 의견 청취 의무화 등을 담았다. 영구처분장 건설에는 37년이 걸린다고 한다. 부지 선정 절차에만 13년, 안전성 검증에 14년, 실제 건설에 10년이 소요된다. 지금부터 시작해도 2062년에야 운영할 수 있다. 만시지탄이지만 착실히 진행해야 하겠다.

27일 국회에서 본회의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고준위 방폐장 선정 주체와 운영 시기를 정했다는 점에서 진전했지만, 영구처분장 부지가 결정되지 않을 때 걱정이다. 원자력발전소 내 임시저장시설만 확대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법에 따르면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장이 건설되기 전까지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인 건식저장시설을 짓도록 했다. 원전 설계수명 기준 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폐물) 용량만 보관하도록 상한선을 정한 것은 원전 주변 지역민의 반발을 고려한 판단이다. 아울러 다른 원전에서 발생한 폐기물은 반입하지 못하도록 했다. 영구처분장 부지 선정은 대표적 난제다. 정부가 전폭적인 지원을 한다고 해도 주민투표를 통과하기가 어렵다. 부지 선정이 차질을 빚을 경우 임시시설이 영구처분장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떨쳐 버릴 수 없는 이유다.

다른 원전 국가를 봐도 핀란드만이 올해부터 영구처분장 운영에 들어가고 부지를 선정하지 못한 국가가 많다. 핀란드는 원전을 지을 때부터 고준위 방폐장 건설을 함께 논의했다. 1983년 부지 확보를 위한 논의를 시작했고, 2001년 부지를 확정, 2016년 공사를 시작했다. 미국은 네바다주 유카산을 부지로 확보했으나 정쟁으로 사업이 중단된 상태다. 일본 독일 영국 캐나다 체코는 부지를 선정 중이다. 프랑스 중국 러시아 정도가 영구처분시설 부지를 확보했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부터 방폐장 부지 선정 작업에 들어갔다. 9차까지 이르는 논의 절차를 거쳤지만 실패했다. 중저준위 방폐물 처분장을 정하는 데 그쳤다. 2015년부터 경주에서 중저준위 폐기물을 처리하고 있다.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급한 불은 껐다. 하지만 부지 선정 기준과 지원책 등 세부 사항이 마련되지 않아 과제로 남았다.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등을 통해 누구나 공감하는 기준을 세워야 하겠다. 영구처분장은 지하 500ｍ 정도 깊이에 폐기물을 매립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지진 등에 안전한 곳으로 정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투명하고 합리적인 선정 절차도 당연하다. 그동안 핵폐기물을 이고 산 원전 주변 주민이 걱정을 덜 수 있는 방안 마련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