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전 심리학과 학부생이었을 때, 그리고 심리학과 교수가 되고나서도 여전히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전공을 듣자마자 이런 얘기로 대화를 시작한다. ‘심리학 전공이라구요? 아, 그러면 지금 제가 무슨 생각하는지 제 마음을 다 읽고 있겠네요?’ 지겨워 죽을 것 같은 이 인사말은 심리학 전공자라면 다들 수없이 들어 온 말일테다. 각종 사이비 심리검사, 최면술, 타로검사, 사주와 궁합 등도 심리학의 일부분인 줄 알고 있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일반인의 기대와는 달리, 심리학은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데이터에 근거한 학문으로, 전공자들에게는 심리과학이라는 표현이 매우 익숙하다. ‘과학의 중추에 대한 매핑’이라는 근사한 제목의 논문에서 2000년도 이후 출간된 과학 저널 7000여 종에 실린 논문들의 상호 인용 측정치를 바탕으로 주요한 7개의 과학 분야를 도출했는데, 그 중 하나가 물리학 화학 의학과 같은 위상을 점하고 있는 과학인 ‘심리학’이었다.
세상은 심리학을 과학으로 대우하고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정부 부처가 주관하는 취업 박람회든, 대학이 마련하는 취업 관련 행사에서든, 늘 빼놓지 않는 ‘인기’ 부스가 바로 타로 적성검사 같은 사이비과학, 혹은 사이비심리학을 근간으로 하는 부스이다.
적성검사는 대표적인 심리검사 중 하나로, 재밋거리로 볼 수 있는 검사가 아니다. 수많은 관련 연구의 모델과 이론을 토대로, 오랜 검사도구 제작기간을 거친 후 타당도·신뢰도를 검증해 표준화 된 검사를 통해 적성을 측정한다. 그런 과학적인 검사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잠재적인 적성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는 것이다. 혈액형으로는 성격을 알 수 없고, 손금으로는 나의 운명을 예측할 수 없다. 점사로는 미래에 발생할 어려움을 예측할 수 없고, 굿으로는 나에게 닥친 어려움을 해결할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적성을 알려고 타로검사를 하고, 대학에 합격할 수 있게 해 준다는 부적을 간직하기도 하며, 심리학자에게 독심술을 기대하기도 한다.
축제와 서커스의 사회를 도맡았던 바넘이라는 미국인은 ‘매 순간 태어나는 바보가 있다’는 말로 매번 속아 넘어가는 관객을 평가했다. 그는 후에 유명한 서커스단 단장이 되었는데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으로, 속임수들로 구성된 쇼를 흥행으로 이끌었다. 심리학자들은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인간의 성격 특성을 마치 자신한테만 해당된다고 믿는 오류를 발견했는데, 잘도 속아 넘어가는 인간심리를 간파했던 서커스 단장의 이름을 따서 이런 현상을 ‘바넘효과(Barnum effect)’ 혹은 실험적으로 이를 검증한 심리학자의 이름을 따서 ‘포러효과(Forer effect)’라고 부른다.
주위에 만연해 있는 각종 운세와 미신, 혈액형별 성격, 타로, 검증되지 않은 수많은 사이비심리검사나 사이비치료법들에 한 번씩은 시간을 들인 적이 있을 것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인 비과학적인 검사나 치료법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사람들은 그 결과에 현혹된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자기결정권에 영향을 미치고, 합리적 사고를 방해하며, 편견과 편향을 조장하기도 하고, 인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지게 할 수 있다.
기회비용이 중요하다. 한 가지를 하는 데 시간을 사용하게 되면, 다른 것을 할 시간을 상실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췌장암 진단 뒤, 주치의의 의견을 무시하고선 입증되지 않은 과일 다이어트를 하고 영매를 찾아다니며 부적절한 치료를 받느라 9개월이나 수술을 지연시키고 말았다. 그 결과 우리는 탁월한 아이디어로 시대를 선도했던 유능한 인재를 어쩌면 빨리 잃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타로와 지문으로 알게 된 적성을 본인의 진짜 적성이라고 믿고 투자한 노력과 시간은 누구에게서 보상받을 것이며, 합리적 사고와 합의로 해결해야 할 현안들에 대해 굿판을 벌이고 점사를 보며 허비한 시간들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말하지만, 기회비용이 중요하다. 합리적인 판단과 의사결정은 개인, 어떤 조직, 더 나아가 국가 운영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좌우한다. 적어도 많은 이들의 현생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권을 가진 자들은 보다 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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