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부터 열흘간 지속된 역대급 영남권 산불이 겨우 진화 국면에 들어갔다. 고온 건조한 대기 속 강풍을 타고 경북 의성에서 삽시간에 안동 청송 영양 영덕 등으로 번졌던 경북 산불은 29일에야 주불이 잡혔다. 영남권 산불이 처음 시작된 경남 산청을 비롯해 하동, 울산 울주 등지에서도 30일 현재 진화율 100%에 근접해간다. 하지만 산불이 남긴 피해는 역대 최악이다. 주민 진화대원 헬기조종사 등 30명이 숨지고 4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산불로는 1989년(26명 사망)을 뛰어넘는 최고 인명 피해다. 피해면적 역시 4만8238㏊로 1987년 산불 통계가 시작된 후 최악이다. 주택 3000여 채, 농업시설 1142곳이 불타고 이재민은 7000명 가깝다. 천년고찰 의성 고운사가 전소됐고, 까딱하면 세계문화유산인 안동 하회마을과 병산서원마저 잃을 뻔했다.

지난 29일 경북 안동시 길안면 한 야산이 산불로 인해 검게 변해 있다. 연합뉴스

이번 영남권 산불은 재난이 우리 사회의 약한 틈을 어떻게 비집고 들어가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일단 불이 나고 피해가 커질 것 같으면 정부와 지자체가 주민을 재빨리 대피시켜야 하지만 이 단계부터 기민하지 못했다. 노인이 많은 지역의 인구 특성을 무시한 채 스마트폰 문자로 고지하는데 그쳐 연락을 받지 못한 사람이 부지기수였던 것이다. 이마저도 늑장 통보가 많았다고 한다. 사망자 상당수가 미처 피하지 못한 60대 이상 고령자여서 행정당국의 판단력과 대처 능력에 아쉬움이 더 크다.

산불이 났다 하면 대형화 장기화 하는데 비해 소방 인력이나 장비는 이를 못 따르는 점도 문제다. 초기 진화에는 소방헬기가 효과적이지만 지자체 보유 대수가 충분하지 않다. 있어도 소방수 용량이 작거나 낙후된 상태다. 야간 진화를 위해선 산불 전용 소방차가 필요하지만 갖춘 곳이 많지 않고 임도 부족으로 활용도를 끌어올리는데 한계가 있다. 진화 인력의 고령화 역시 풀어야 할 숙제다. 꾸준한 조림 작업으로 빽빽해진 삼림이 대형 산불에는 오히려 취약성을 드러내는 역설적인 상황 또한 해결이 쉽지 않은 과제다.

역대급 인명과 재산 피해에도 정치권은 추경 편성 여부를 놓고 네 탓 공방 중이다. 산이 탄 것도 문제지만 주택과 농작물, 경작지가 화마에 휩쓸려 이를 복구하는데 막대한 비용이 든다. 한시라도 빨리 예산을 편성해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잃은 주민들의 눈물을 닦아 줘야 한다. 행정당국은 작은 실수가 어떤 참극으로 이어지는지 확인한 만큼 이를 산불 대응 체계 재정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소각 행위 단속부터 진화 장비와 인력 확충, 재난 매뉴얼 개선 등이 그것이다. 산불을 끄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사투를 벌였지만 결정적인 분기점은 가랑비였다. 재해를 부른 것도, 재해를 끝낸 것도 결국 자연이었다는 뜻이다. 갈수록 오르는 평균 기온, 특정 기간에 몰리는 강우, 잦아진 돌풍 등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비할지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