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이하 현지시간)부터 부과할 예정이던 상호관세를 전격 유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동부시간으로 이날 오후 1시 18분께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대중국 125% 관세는 계획대로 시행하되 나머지 57개 무역파트너(56개국+유럽연합 27개국)에 대한 상호관세는 90일간 부과를 유예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 5일부터 185개국에 공통 적용하는 10% 기본관세는 유지되고, 국가별 추가관세는 90일 이후로 연기됐다. 한국에는 기본관세(10%)와 추가관세(15%)를 합쳐 25%가 부과될 예정이었으나 당분간 10%만 적용받는다. 상호관세 유예 조치 이후 미국 나스닥은 무려 12.16%나 폭등하고 한국 코스피도 7% 가까이 뛰었다. 코스닥은 오전 한때 매수 일시효력정지(사이드카)가 발동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 말 한마디에 그야말로 전세계가 요동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자동차 경주 관계자들과 사진 촬영 행사를 갖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이날부터 발효 예정이던 상호관세 적용을 90일 유예한다고 깜짝 발표했다. AFP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이 예측범위를 완전히 넘어선 건 아니다. 취임 후 첫 관세전쟁 대상이었던 캐나다 멕시코 사례에서 보듯 일단 크게 질러 놓고 상대 반응을 봐가며 연기 축소 철회하는 행태는 잘 알려진 트럼프 특유의 ‘미치광이 전략’이다. 문제는 파장과 결과다. 83개국에 10~49%의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해놓고 발효 당일 13시간 만에 이를 뒤집음으로써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지나치게 커지고 있다. 세계가 혼돈에 빠진 와중에도 골프나 치러 다니는 트럼프 모습에 각국은 또 한번 혀를 내두를 뿐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트럼프의 정확한 속내를 짐작할 수 있게 된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 하나가 확실한 중국 때리기다. 미국은 상호관세를 유예하면서 중국만 예외로 남겼다. 미국의 관세 인상에 중국이 보복으로 맞서자 추가 세율을 매기기까지 했다. 주요국 공장 역할을 하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 등 아시아 국가에 고율의 관세를 안겨 제조업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전략도 뚜렷하다. 그러면서 한국에는 ‘패키지 딜’을 제시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전화통화에서 관세 문제를 방위비 분담금, 주한미군 주둔 등과 한 바구니에 넣어 협상을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한국은 G2의 무한 격돌과 미국 우선주의 틈바구니에서 살 길을 찾아야 하는 운명이다.

상호관세 유예기간이 끝나는 시점은 6·3 대선 이후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 매듭은 새 정부 몫이나 그때까지 현 정부가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서둘러서도 안 되지만 가만 있어선 더 안 된다. 경제와 안보는 별개라는 우리측 원칙론으로는 트럼프를 설득하지 못한다. 관세나 방위비 인상은 폭이 문제지 그 자체는 피하기 어려운 이슈다. 그렇다면 이것을 주는 대가로 우리는 무엇을 받아낼지 고민해야 한다. 보다 확실한 핵안보 보장, 조선업 협력 강화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양보가 불가피하다면 이번 기회에 챙길 건 최대한 챙기는 실용전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