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14일 처음 출석한 형사재판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는 헌법재판소 파면 선고 후 10일 만에 서울중앙지법에 출두, 1시간20분가량 공소사실을 직접 반박했다. 지귀연 부장판사는 그가 일방적으로 발언을 길게 하자 제지하기도 했다. 8년 전 윤 전 대통령이 검사 시절 기소한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 공판이 열렸던 417호 대법정에서다. 변호인단에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넨 뒤 피고인석에 착석한 그는 “헌법기관 권능 행사를 무력화하려 했다”는 검찰 주장에 “비상계엄을 사전 모의한 적이 없고 몇 시간 만에 끝난 사건을 내란으로 구성한 것은 법리에 맞지 않다”고 맞섰다. 예상했지만 ‘역시나’였다. 성찰은 없고 법리 다툼만 벌였다. 전직 대통령이 형사 피고인석에 선 것은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에 이어 다섯 번째다. 모두 보수 진영 대통령이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첫 형사재판이 열리는 14일 윤 전 대통령이 탑승한 차량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불구속 상태인 윤 전 대통령은 “탄핵심판 과정에서 일방적 진술이 많이 배척됐는데도 공소장에 반영되지 않았고, 초기 과정에서 겁먹은 사람들이 수사기관 유도에 따라 진술한 것이 검증 없이 반영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형사재판에서도 비상계엄이 야당 폭거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평화적인 ‘메시지 계엄’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국회에 군 병력을 보낸 것도 “안전사고 방지와 질서 유지를 위해서였다”는 기존 설명을 되풀이했다. 또 검찰의 계엄 사전 모의 주장엔 “코미디 같은 이야기”라고 평가절하했다. 검찰 공소장이 조서를 모자이크식으로 붙여 수준 낮다며 비판했고, 법원도 중구난방식으로 재판을 진행한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계엄선포문 담화문 포고령을 작성했고,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정치인 체포 시도까지 보도를 보고 알았다고 말해 부하 책임으로 돌리는 행태마저 여전했다. 한때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 책임감과는 영 딴 판이라 하겠다. 자기 주장이 헌법재판소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도 이전 발언을 일관되게 반복했다.

12·3계엄 선포 당일 국회에서 계엄군을 지휘한 조성현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 증언은 윤 전 대통령 측 주장과 달랐다. 그는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에게서 “국회에 들어가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대통령이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의원들을 국회에서 강제로 끌어내려고 했는지다.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윤 전 대통령은 죄를 면하기 어렵다.

윤 전 대통령 주장을 믿을 국민은 많지 않다. 그는 형사재판에서 헌법재판소 결정을 부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죄를 인정하고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을 그에게서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자기만 옳다는 확증편향을 벗지 못한다면 사법 절차에 따른 엄정한 단죄만 남았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이것만이 헌정 질서를 바로 세우고 한국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