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로 제21대 대통령선거가 8일 남았다. 막판으로 접어들면서 후보들이 네거티브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 23일 두 번째 TV토론에서 상대 후보 약점을 파고드는 ‘프레임 전쟁’에 골몰했다. 정책 검증은 겉핥기였다. 정책공약집을 아직 내지 않았다. 당선인은 선거 다음 날인 6월 4일부터 국정 운영에 들어가야 한다. 조기 대선이라 인수위원회를 꾸릴 수 없다. 대한민국호 방향타가 될 공약집이 26, 27일께 나온다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이고, 후보가 아무리 늦게 확정됐어도 이건 아니다. 국민과 약속보다 일단 되고보자는 식이다. 국가 비전보다 상대 헐뜯기 경쟁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가 이날 충남 공주공산성에서 유세하는 모습.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조기 대선을 치른 제19대 대선에서 홍준표 후보가 투표일 22일 전, 문재인 후보가 11일 전 공약집을 냈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해명은 말 그대로 핑계다. 이번 대선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이미 예견됐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수권 경험이 있는 공당이다. 시간이 아니라 의지가 문제다. 후보들이 대선을 정책선거로 이끌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해석이 그래서 나온다. “내란 심판”과 “가짜 퇴치” 등 프레임 전쟁에만 열을 올린다. 대통령만 되면 그만인가. 정책은 그 때 가서 하면 된다는 구태가 여전하다.

재외국민투표가 지난 20일부터 시작해 25일 끝났다. 선상투표는 26~29일이다. 재외국민투표 대상자가 25만8200명, 선상투표는 3051명이다. 26만 명의 유권자가 후보 정책을 살펴보지 못하고 투표했거나 해야 하는 깜깜이 선거다. 후보들이 제시한 10대 공약으론 부족하다. 최근 각 가정으로 배달된 책자형 선거공보물엔 후보 재산, 전과, 간단한 공약 등만 나와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후보를 제외하고 나머지 후보 공보물은 한 장 또는 두 장짜리였다. 양당 후보 공보물도 8장 16쪽으로, 선거 슬로건과 간단한 공약 정도만 나오지 자세한 사항은 없다. 분야별 핵심 과제, 실현 계획, 지역별 공약, 재원 방안 등을 제시해야 유권자가 판단할 수 있다. 100~200페이지에 달하는 공약집은 공직선거법상 의무는 아니지만, 국민과 약속이자 차기 정부 청사진이다.

사회 분야 TV토론은 상대 후보 깎아내리기였다. 형수 욕설과 법인카드 오용, 소방관 갑질과 내란수괴 비호 등 상대 후보 약점을 강조했다. “전광훈 목사에게 눈물을 보였다” “과거 부정선거론에 동조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수위 높은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품격과 거리가 멀었다. 주제인 사회 갈등 극복과 통합 방안은 네거티브 발언 때문에 기억 나지 않을 정도다. 가덕도신공항 부지 조성공사 지연 사태와 고준위핵폐기물 처리 문제 등 현안은 심도 있게 토론되지 않았다. 27일 정치 분야 토론은 더 거친 얘기가 오갈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민 머리 속에는 싸움 외 남는 게 없다. 대선 후보 토론이 시대정신 경연장이어야 한다는 명제는 교과서에만 나오는 얘기로 전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