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노동관련 공약 중 곧바로 와닿는 것은 주 4.5일제와 정년 연장일 것이다. 주 4.5일제와 정년 연장은 모두 입법이 필요한 사안이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이 그랬듯, 이재명 대통령 역시 집권 1년차에 여당이 국회 과반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 공약들은 그의 의지만 있다면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영향력이 큰 사안들이므로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주 4.5일제가 실현되려면 연장근로를 제외한 1주 상한 근로시간이 현행 40시간에서 36시간으로 단축되어야 한다. 근로기준법 제50조 개정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2003년에 주 44시간에서 주 40시간으로 이 조항을 개정함으로써 토요일 근무를 없애고 주 5일제를 정착시킨 적이 있다. 그로부터 어느덧 22년이 흘렀다. 그 사이 주요 선진국들의 근로시간은 더욱 단축되었다. OECD의 2022년 통계에 따르면 주요 선진국인 G7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2011년께 이미 35시간이 되었고, 2021년 기준 OECD 국가 평균도 36.8시간이다. 세계와 비교해보면 주 36시간으로의 근로시간 단축은 결코 과격한 정책이 아니다. 2025년 한국의 경제수준과 위상을 생각하면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포괄임금제 금지 명문화 공약도 근로시간 단축과 맞닿아 있다. 연장근로를 몇 시간을 하든지와 상관없이 모두 포괄해 정해진 월급만 주는 것이 포괄임금제다. 사무직, 외근직들의 장시간 근무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법원 판례는 이미 포괄임금제를 엄격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현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근로기준법에 명문화하고 새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도한다면 부당한 연장근무가 더욱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정년 연장은 좀 더 복잡하다. 퇴직 이후 공적연금이나 사회보장제도가 잘 자리잡은 사회라면 정년을 법으로 강제할 유인이 적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낮은 편인 데다 지급개시 연령이 65세라 정년 이후 5년의 소득공백기간이 발생한다. 조기노령연금 신청이 가능하지만 5년을 당겨서 받으면 최대 30%가 감액된다. 노인빈곤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년 이후에도 다른 일자리를 구하면 될 것 같지만 대부분 저임금이고 그마저도 많지 않다. 정년 연장은 국민이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 더 근무하게 하는 정책이다. 개인에게는 제일 잘하는 일을 통해 안정적인 노동소득을 확보해 노년기 빈곤 진입을 늦추는 효과가 있고, 사회 전체적으로도 고령자의 인적자본을 최대한 활용한다는이익이 있다. 더구나 이미 우리 사회는 60세를 더 이상 ‘고령’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으므로주 4.5일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사회적 합의도 쉽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노란봉투법 공약은 노동조합을 경험하지 못한 국민 입장에서는 그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다보니이 법이 무분별한 파업을 조장한다거나 아예 기업이 망한다는 식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도 많다. 노란봉투법의 핵심은 노동조합이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진짜 사장’과 단체교섭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근로자에 대한 무분별한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것이다. 발단이 된 사건은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하청노동자 사건이다. 이들은 한화오션 거제조선소에서 한화오션의 배를 만들고 있지만 근로계약서상 사장은 한화오션이 아닌 하청업체 대표이다. 임금이든 재해예방이든 어차피 결정권은 원청인 한화오션에 있다. 그럼에도 ‘진짜 사장’인 한화오션과는 교섭을 할 수도 없고, 파업도 불법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 월 200만 원을 버는 노동자에게 수천억 원의 천문학적 손해배상청구가 날아들기도 한다. 그러니 실제 결정권이 있는 원청과 단체교섭을 하도록 하고, 받지도 못할 돈을 협박용으로만 쓰는 천문학적 손해배상도 제한하자는 것이 바로 노란봉투법이다. ‘진짜 사장’과 교섭이 가능해지면 처음에는 파업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후에는 점차 서로를 교섭상대로 인정하게 되고, 결국에는 파업이 오히려 줄어들게 된다. 다른 정규직 노동조합들도 매년 교섭을 하고 있지만 파업은 손에 꼽을 정도로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노란봉투법의 주요내용은 이미 법원이 해석을 통해 인정하고 있는 법리를 법률에 뒤늦게 반영하는 측면이 강하다. 유엔 국제노동기구(ILO)도 한국정부에 노란봉투법의 채택을 직접 요청하고 있다. 직장인 70%가 노란봉투법의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답변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다른 주요 공약에 비하면 훨씬 사회적 공감대가 높은 공약이므로 당장 실행되어도 큰 무리가 없다. 대통령 공약대로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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