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6일 취임 후 첫 시정연설에서 경제 성장과 공정을 강조했다. 주요 키워드로 경제 24회, 성장 12회, 회복 10회, 민생 9회, 공정 5회 등장했다. “경기 회복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추경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와 집행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또 “인공지능 등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겠다”고 밝혔다. 국가 위기 상황 타개를 위해 무난하다는 평가다. 하지만 야당과의 충분한 대화와 타협 없이 진행되는 추가경정예산안과 총리 인선은 다시 한 번 숙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야당 대표와 밥 두 번 먹었으니 대화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면 위험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26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마친 뒤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과 악수하며 퇴장하고 있다. 김정록 기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대통령이 야당 협조를 원한다면 김민석 의원의 국무총리 지명을 철회하라고 요청했다. 증빙자료를 제대로 내지 않아 깜깜이 청문회였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재산 증식 의혹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했다는 게 야당 주장이다. 증여세 관련 자료 요청에 야당 의원의 ‘6억 장롱 발언’을 철회하면 줄 수 있다고 하는 등 다소 무리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증인과 참고인 없이 진행한 인사청문회는 둘째날 오후 정회된 후 야당이 불참하면서 파행으로 끝났다. 김 후보자도 이를 의식한 듯 “국민 눈높이에 미흡한 대목이 있다”며 사과했다. 대통령과 여당은 김 후보자 임명을 강행할 태세다. 이래선 이 대통령이 강조해온 협치가 초기부터 어렵게 된다. 정부와 여당이 양보할 때 협치는 가능하다. 야당과 대화·타협 없는 일방적 강행을 누가 협치라 하겠는가.

정부 추경안 중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빚 탕감에 우려하는 시선이 많다. 열심히 벌어 빚을 갚아가는 사람만 손해를 본다는 생각 때문이다. 어렵다고 정부가 빚을 탕감하면 앞으로 누가 열심히 부채를 청산하겠느냐는 것이다. 이는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엠브레인퍼블릭 등이 진행한 전국지표조사 중 채무 탕감을 묻는 의견에 59%가 ‘도덕적 해이나 성실히 빚을 갚은 사람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있어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찬성한다’는 37%에 그쳤다. 국가 빚이 늘어나는 점도 걱정거리다. 정부 추경안을 집행하려면 20조 원가량의 적자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시정연설 전 국회의장실에서 여야 지도부와 환담을 나눴다. 이 자리에서 “제가 이제 을이다. 잘 부탁한다”며 “정부는 직진하는 집행기관이고 의회는 바른 길인지 점검하는 기능을 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소수 야당 의견이라도 경청하길 바란다. 선입관을 가지고 야당을 대하면 윤석열 전 대통령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다. 국회를 갑처럼 생각하는 마음을 임기 끝까지 유지할 때 이 대통령의 희망처럼 임기 말이 임기 초보다 더 높은 지지율을 받을 수 있다. 야당도 무조건 반대만 할 게 아니라 정부·여당이 잘 할 땐 박수를 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겠다. 국민의힘이 윤석열 정부에서 집권해봤으니 여당 처지도 잘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