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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262> 꽃 중의 왕인 모란에 빗대 신문왕에게 충고한 설총

온갖 꽃을 능가할 정도로 유독 빼어났습니다(凌百花而獨出·능백화이독출)

  • 조해훈 고전인문학자
  •  |   입력 : 2023-04-16 18:44:18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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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옛날에 화왕(花王·모란(牧丹))이 처음 세상에 나타나자 꽃향기 가득한 동산에 심고 푸른 장막으로 주위를 둘러쌌습니다. 봄이 되니 아름답게 피어 온갖 꽃을 능가할 정도로 유독 빼어났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곱고 어린 꽃의 정령들이 모두 찾아와 화왕을 뵈었습니다. … …

臣聞昔花王之始來也, 植之以香園, 護之以翠幕, 當三春而發艶, 凌百花而獨出. 於是自邇及遐, 艶艶之靈, 夭夭之英, 無不奔走上謁 … … (신문석화왕지시래야, 식지이향원, 호지이취막, 당삼춘이발염, 능백화이독출. 어시자이급하, 염염지령, 요요지영, 무불분주상알 … …)

위 문장은 현재 전하는 설총(薛聰·655~?)의 유일한 글로, ‘삼국사기’에 실려 있다. ‘동문선’에도 수록돼 있다.

설총은 요석궁(瑤石宮)에서 원효가 태종 무열왕의 딸 요석공주(瑤石公主)와 동침하여 낳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서와 경전에 뛰어났다. 위 문장은 전체 글의 앞부분이다. 기이한 이야기를 해달라는 신문왕(神文王)의 부탁으로 설총이 지었다. 꽃을 의인화한 우언(寓言)이다. 전체 글에는 세 종류 꽃이 나온다. 첫째는 꽃의 왕이라 불리는 모란이다. 둘째는 아리따운 아가씨로 묘사되는 장미이다. 셋째가 할미꽃으로 바른말을 하는 사내의 모습이다.

사내는 화왕(신문왕을 비유)에게 임금이 쾌락과 안일에 빠질 것에 대비해 그를 바로잡아줄 신하를 곁에 두어야 한다고 은유적으로 말한다. 신문왕은 이 이야기를 듣자 정색하고 훗날의 경계로 삼겠다고 말했다. 그리곤 설총을 높은 관직에 임명했다.

모란꽃이 피고 있다. 며칠 전 하동 악양의 정암 이형규 선생님 댁 뜰에는 짙붉은 모란꽃이 제법 피어있었다. 100칸이 넘었다는 한옥인데 현재는 본채만 본래 모습으로 남아있다. 원고를 작성하는 내내 전남 강진 김영랑 생가의 모란이 생각났다. 그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유명해서인지 생가 주변에는 온통 모란이다. 일 년에 몇 차례 그곳을 다녀온다. 이 원고를 다 쓰고 나면 김영랑 생가로 떠날 생각이다. 모란도 보고 간 김에 백운옥판차도 한 잔 마시고 와야겠다. 목압서사에서 1시간 반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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