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每年今日淚些兒·매년금일누사아

인간으로 불효한 자는 내가 유일할 것이니(人間不孝唯我獨·인간불효유아독)/ 해마다 오늘이면 못난 이 아들 눈물 흘리네.(每年今日淚些兒·매년금일누사아)/ 자손들은 내 속에 맺힌 한을 알지 못하면서(兒孫不識中心恨·아손불식중심한)/ 손 씻고 술 한잔 드시라고 은근히 권하네.(洗手慇懃勸一巵·세수은근권일치)

위 시는 조선 후기 정조 때 선비 남하행(南夏行·1697~1781)의 ‘아버님을 그리며’(思父)로, ‘한시작가작품사전’(국학자료원·2007)에 수록돼 있다. 남하행이 선친 기제사(忌祭祀) 때에 지은 시이다. 그는 부친이 세상을 버린 지 여섯 달 후에 태어났다. 당연히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다. 성인이 된 뒤 죄인으로 자처했다. 자기 생일에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았다. 화려한 옷을 입지 않았고, 유흥 자리에도 가지 않았다. 길을 가다가 효자비(孝子碑)를 보면 반드시 절을 했다. 그런 남하행이다 보니 부친에 대한 그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효심 또한 남달랐다. 해마다 선친 기제가 돌아오면 눈물 흘렸다. 식구들은 그런 시인의 마음을 알 길이 없다. 그저 기제가 끝나면 음복주(飮福酒)를 드시라고 야단이었다. 그는 일대 산천을 두루 편력하는 취미가 있었다. 선인의 기행문을 모아 ‘와유록(臥遊錄)’이라는 책을 엮었다. 선대의 사적·언행과 공사문적(公私文籍) 등을 집성한 ‘술선록(述先錄)’도 지었다.

필자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동안 어머님과 아버님 기제사가 있었다. 비행기 요금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 일정을 잡다 보니 그렇게 됐다. 다행히 바로 아래 남동생이 퇴직하고 필자가 사는 하동 화개면 소재지에서 ‘쉼표하나’ 카페를 운영한다. 그리하여 남동생이 부모님 기제사를 모셨다. 선친 기제사 때는 부산에 사는 여동생 내외도 참석했다. 그렇지만 장남인 필자가 몸소 부모님 기제사를 모시지 못해 불효막심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순례길을 걸으면서도 내내 죄스러운 마음을 안고 있다.

필자는 지난달 18일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피레네산맥을 우의도 없이 넘으면서 죽다시피 했다. 게다가 감당하기 힘든 심적인 고통까지 있었다.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 쉬면서 걷는데도 애먹고 있다. 아직 걸을 길이 제법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