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가늘게 보슬보슬 내리다가(春雨細不滴·춘우세부적)/ 밤중에야 은은한 소리 내네.(夜中微有聲·야중미유성)/ 눈 녹아 남쪽 개울물 불어나고(雪盡南溪漲·설진남계창)/ 풀은 싹을 많이도 돋아내겠네.(草芽多少生·초아다소생)
위 시는 고려시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년)의 ‘봄에’(春·춘)로, 그의 문집인 ‘포은집(圃隱集)’ 권 2에 수록돼 있다. 위 시는 ‘춘흥(春興)’ 또는 ‘춘우(春雨)’로도 알려져 있다. ‘한국고전문집총간’과 필자가 소장한 ‘포은집’에 ‘春(춘)’으로 돼 있다. 긴 설 명절 연휴를 보내고 그제 입춘이 지났다. ‘헌세발춘(獻歲發春)’의 시기이다. 즉 해가 바뀌었고 봄기운이 돋아나는 때이다.
봄비는 너무 가늘어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밤이 되어 주위가 고요해져야 희미하게 들릴 정도다. 하지만 이 비가 겨울 동안 쌓인 눈을 녹인다. 개울에는 물이 불어난다. 그뿐만이 아니다. 풀도 이 비를 맞고 새싹을 틔운다.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열려고 한 이성계 일파에 정몽주는 동조하지 않았다. 그가 새봄을 맞이하며 돋아나기를 바랐던 ‘풀싹’은 무엇이었을까? 예나 지금이나 시(詩)는 은유와 상징을 함의(含意)한다.
입춘 일에 필자는 차산(茶山)에 올라가 억새와 가시를 베어내는 작업을 늦게까지 했다. 잡목을 베어내는데 나무에 물기가 벌써 제법 올랐음을 느꼈다. 설 전에는 낫으로 내려치면 바로 탁 부러지거나 잘린다. 그런데 그렇게 부러지거나 잘리지 않았다. 겨울에 낫질을 해본 사람은 이해할 것이다. 차밭에 있는 스무 그루 매화나무에는 곧 터뜨릴 기세로 꽃망울이 맺혔다. 이번 주 한파가 끝나면 매화가 필 것 같다. 춘흥(春興)이 일어난다. 봄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있다.
필자는 ‘입춘에’라는 시를 써 인터넷 신문인 ‘인저리타임’에 보냈다. “ … 날씨는 춥고 바람은 차가워도/ 저 속에 이미 봄이 와 있을 게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입춘이네/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만 사람들이 알려주곤/ 자연의 법칙인 절기에 대해선 말하지 않네/ 아직 매서운 추위는 남아 있지만/ 어김없이 때가 되면 새 생명이 올라오는/ 봄, 희망을 주는 봄이 오고 만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