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에 임하니 돌길이 절을 가리키고(臨溪石路指僧家·임계석로지승가)/ 나막신의 굽 이끄니 풀싹에서 향이 나누나.(屐齒惹香生草芽·극치야향생초아)/ 홀연히 기이한 꽃풀이 객의 눈 놀라게 하고(忽有奇芳驚客眼·홀유기방경객안)/ 바위에 의지한 한 그루 영춘화가 있네.(倚巖一樹迎春花·기암일수영춘화)/ …
위 시는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 생존한 문인인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1330~?)의 ‘적용암에서 노닐면서’(遊寂用菴·유적용암)로, 그의 시집인 ‘운곡행록(耘谷行錄)’ 권 5에 수록돼 있다. 칠언율시이지만 뒤의 네 구절은 사찰과 수행 내용이어서 생략했다. 원천석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교체되는 시기의 문인이다. 그는 고려나 조선왕조에 출사하지 않고 역사에 대한 증언을 남기고자 위 시집을 지었다. 그는 망한 고려 왕조를 회고하며 다음과 같은 시조도 지었다.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로다. 오백 년 왕업이 목적에 부쳤으니, 석양에 지나는 객(客)이 눈물겨워하노라.”
여하튼 위 시에서 시인은 시냇가에서 돌길을 따라 적용암으로 올라간다. 새로 돋아나는 풀의 싹에서 향이 난다. 바위에 영춘화가 아래로 늘어져 노란 꽃을 피우고 있다. 영춘화와 개나리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춘화는 바위나 언덕 등에서 가지가 아래로 처지며 핀다. 반면 개나리는 가지가 뻣뻣하게 위를 향하며 힘이 있고 키가 크면 곡선을 그리며 휜다. 꽃잎도 영춘화는 넓게 퍼진다.
북송 때 시인 왕안중(王安中·1075~1134)도 ‘영춘화’(迎春化)를 주제로 시를 읊었다. “수북하게 쌓인 겨울 눈을 털어내고(拂去隆冬雪·불거융동설)/ 희롱하듯 온 가지를 샛노랗게 만드네.(弄作滿枝黃·농작만지황)/ 마른 가지에서 밝은 꽃들 피어나니(明花出枯萎·명화출고위)/ 봄바람 불면 가장 먼저 향기롭다네.(東風第一香·동풍제일향)” 영춘화는 말 그대로 봄을 맞이하는 꽃이다. 그리하여 왕안중은 마지막 구절에서 봄에 가장 먼저 향기를 피우는 꽃이라고 했다.
필자는 요즘 매일 같이 차산(茶山)에 올라가 차밭을 덮은 억새와 묵은 고사리 등을 낫으로 잘라내는 작업을 한다. 어제 어둑해질 무렵 산에서 내려오니 개울가에 영춘화가 샛노랗게 피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