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키스탄 떠나 12년째 정착

- 주말마다 북부동 밤거리 순찰
- 취객 챙기고 청소년 귀가 시켜

- 통역·비행기표 제공 모임 등
- 양산 이주노동자 슈퍼맨 자처

"우리가 먼저 변해야 편견도 사라지지요."

올해로 한국 땅을 밟은 지 12년째인 파키스탄 국적의 쇼우캇 라나(Shoukat Rana·41) 씨는 경남 양산시 '양산 외국인 명예경찰대' 대장이다. 매주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동료 이주노동자와 함께 양산 지역 밤거리를 순찰한다. 이들은 내·외국인 구분 없이 취객을 챙기고 밤거리를 방황하는 청소년을 귀가시키는 등 방범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는 "북부동은 양산에서 이주노동자 간 사건·사고뿐만 아니라 외국인과 내국인 사이 크고 며은 시비가 잦은 지역"이라며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새로운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양산 외국인 명예경찰대'는 지난해 양산경찰서와 양산에 거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지역사회에 도움을 주고자 만든 자율 방범대다. 양산시 북부동 일대는 외국인 전용 가게 등이 밀집해 외국인이 자주 찾는 곳으로 치안 우려가 큰 지역이었다.

경찰 제안에 동감한 쇼우캇 라나 씨를 비롯해 7개국 22명의 이주노동자가 명예경찰대에 참여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을 깨고, 지역사회에 도움을 주려고 나선 것이다. 고단한 몸에도 이들은 주말마다 오후 8시부터 밤 11시까지 2명씩 짝을 이뤄 북부동 일대를 순찰한다.

그러나 방범 활동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처음 순찰 때는 취객들에게 '너희가 뭔데 이런 것을 하느냐' '고향으로 돌아가라' 등 모욕을 당하기도 했다. 같은 이주노동자들로부터는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때문에 오해와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는 "방범 활동 1년을 넘기면서 지역 상인과의 친밀감 형성은 물론, 이주노동자의 이해와 협조도 눈에 띄게 나아졌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처럼 쇼우캇 라나 씨는 양산에서 이주노동자 사이에 터줏대감으로 통한다. 2004년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이주노동자 신분으로 파키스탄과 한국을 오갔던 그는 2008년 양산 지역에서 터를 잡았다. 양산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생필품 가게와 식당을 연 것이다.

2009년에는 양산외국인노동자의집 자원봉사자였던 한국인 아내를 만나 결혼, 두 아이를 둔 가장이 됐다.

"저는 한국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둔 행복한 가정을 꾸렸지만, 많은 이주노동자가 편견 속에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고 강조한 그는 이주노동자와 관련된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파키스탄인 40여 명과 함께 '비스밀라 커뮤니티 양산'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타국 생활의 고단함을 털어내는 친목 모임이지만 실상은 봉사 활동이 주된 목적이다. 매월 1만 원을 모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주노동자에게 비행기 표를 제공하고, 소통이 어려운 동료를 위해 경찰서와 고용노동부에서 무료 통역을 자청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지역의 홀몸노인과 불우이웃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생필품도 정기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쇼우캇 라나 씨는 이주노동자의 일자리 창출에도 열심이다. 식당에서 파키스탄 음식만 내놓아도 되지만 그는 인도와 우즈베키스탄 요리사를 별도로 채용, 각국의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울산이나 부산에 2호점 개설을 구상하고 있다.

그는 "비록 태어난 곳은 다르지만, 앞으로도 외국인이 아닌 양산시민의 한 사람으로 지역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 생각"이라며 "지역사회도 이주노동자를 색안경을 쓰고 밀어내려고 하기보다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더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봐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